‘공자 같은 말이네’ 또는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들을 종종 합니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쓰입니다. 당연히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많이 들을 수 있는 얘기지요. 그중에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라거나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얘기가 포함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악한 자가 벌을 받지 않고 번영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궁금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악한 자가 벌을 받지 않고 번영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또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나요? 이에 대한 종교, 철학, 역사, 정치학자들의 해석이 있습니다. 우선, 성경 구약의 시편이나 욥기 같은 곳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왜 의인은 고난을 겪고, 악인은 잘 사는가?”라는 질문이 반복되지요. 종교적 해석은 보통 “궁극적인 심판은 이 세상 너머에서 이루어진다”라고 대답하지요. 역사학자들은 개인의 도덕성보다는 제도나 권력 구조가 개인의 흥망을 결정한다고 봅니다.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권력의 균형 속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마키아벨리 같은 현실주의자는 “선보다 능력이 권력 유지에 중요하다”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근대 철학자들의 논의는 어떨까요? 칸트는 도덕은 ‘의무 그 자체’이지 결과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악인이 번영한다고 해서 도덕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며 우리는 보상 여부와 무관하게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철학에서는 역사는 궁극적으로 ‘이성의 진보’로 나아가지만, 과정에서는 불의와 억압이 얼마든지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당대에 벌을 받지 않는 악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사적 필연성 속에서 정의가 드러난다고 본 것이지요. 근대 철학자들과는 약간 달리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세상에 본디 정의가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부조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기 선택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지요. 롤즈 같은 정치 철학자는 ‘개인의 번영’보다 ‘사회적 정의’의 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집중하였습니다. 즉 개인의 흥망은 우연적이지만 제도는 공정해야 한다는 관점인 것이지요.
이렇듯 역사학자들은 제도와 권력 구조 속에서 악인의 번영을 설명하고, 철학자들은 도덕과 행복 관계의 부조리성 같은 문제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내리는 답은 ‘세상은 반드시 정의롭지 않다. 그럼에도 정의는 인간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과제’라는 식으로 귀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도 처음 가졌던 궁금증이 풀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인 저는 선과 악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은 이 세상 너머에서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입장을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악한 자가 벌을 받지 않고 번영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