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영성과 일상적 영성

by 염홍철


제가 새마을운동중앙회장으로 일할 때, 오프라 윈프리의 저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읽고 종교적 차원과는 관계없이 ‘일상적 영성’에 대한 큰 공감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우주의 모든 창조적 행위를 일으키는 에너지와 내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 것 ··· 내가 그것의 일부이며 그것 또한 영혼이 나의 일부일, 바로 그것을 나는 영성이라 부른다”라고 했습니다. 즉 오프라 윈프리가 말하는 영성은 특정 종교 없이도 영성을 경험할 수 있고, 의식과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새마을지도자들이 공동체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일상적 영성이라 정의하고 그 점을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 즉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자기희생을 통해 순간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타적 행동의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은 바로 영성의 핵심이다’라고 역설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오프라 윈프리의 영성에 대한 해석과는 ‘같으나 다른’ 해석을 발견하고 이것이 새마을지도자를 비롯한 ‘돌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보다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파커 파머의 영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파커 파머는 “영성은 성당이나 사찰에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만들고, 돌보는 모든 순간에 깃들 수 있는 ‘삶의 깊이’”라고 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중심 경험을 ‘자기 존재의 확장’이라고 했는데 파커 파머는 ‘일, 창조, 돌봄’ 속에서 발견되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프라 윈프리의 영성은 개인적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파커 파머의 영성은 공동체적 실천에서 나온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두 사람의 주장에는 대부분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교리나 의례보다는 삶의 경험 속에서 발견되는 영성을 강조하였고,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의 순간과 구체적 삶에서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오프라 윈프리의 영성은 내가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상태라는, 보다 추상적인 개념이라면 파커 파머의 영성은 일상 속 돌봄과 창조에서 드러나는 삶의 깊이이기 때문에 새마을지도자들이나 돌봄을 실천하는 분들의 삶의 깊이라는 점에서, 보다 구체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의 영성에 대한 논의는 종교적 차원의 영성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종교적 차원에서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에 중심을 두는 영성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여기에서의 영성은 개인적 체험보다는 교리와 공동체적 신앙 행위에 의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월적 존재와의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영성은 궁극적으로 구원이나 해탈을 추구하는 길이지요. 그래서 종교적 영성과 일상적 영성을 구별하고 싶습니다.


다만 종교적 영성이나 일상적 영성 모두 ‘나는 왜 사는가?’, ‘내 삶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종교적 영성이 구체적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같이 일상적 영성도 일과 관계해서 구체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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