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그제,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극우세력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 글 자체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되지 않았으나, 몇 분이 극우세력도 문제지만 극좌세력도 문제라는 지적을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극우와 극좌의 위협을 대칭적으로 파악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극좌세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극우세력의 부상에 대해서 문제 삼았는가를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극좌세력은 단순히 진보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기존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폭력, 불복종, 점거, 파괴 등 급진적 수단을 통해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최근 십여 년 동안 실제로 폭력적이거나 체제 불안을 초래한 사건의 대부분은 극우세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2021년 1월, 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 유럽에서의 이슬람 혐오 기반 테러, 반이민, 반페미니즘, 반 글로벌 운동 등이 극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나 언론·학계에서는 극우의 급진화나 과격화가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된 것입니다. 반면 극좌세력은 정치적 급진성을 가질지라도 물리적 폭력이나 체제 전복 시도 측면에서는 비교적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공공의 담론에서 초점이 자연스럽게 극우로 이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과거 서구 사회에서 급진 좌파가 주장하던 가치들, 예컨대 사회적 평등, 환경 정의, 성소수자 인권, 복지 확대 등은 이미 중도 좌파나 진보 정당의 정책 대안으로 수용·제도화되었습니다. 따라서 극좌의 담론적 영역이 좁아졌고, ‘급진적’이라 불릴 만한 좌파 세력조차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극우와 극좌의 급진성을 비교하면 극좌는 주류화된 진보 의제로 흡수된 반면, 극우는 여전히 체제 밖의 위협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서 극우와 우파가 다르고 극좌와 좌파가 다름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극좌세력의 존재가 미미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시대정신과 사회 위협 인식이 극우 중심으로 재편돼 있기 때문에 양 세력의 정치 사회에 주는 위협은 비대칭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극좌의 영향력이나 위협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지요. 즉 사회 불안이 높아질수록 극좌보다 극우가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좌파 급진주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했다는 인식이 강해져서, ‘위험한 극단’을 다루는 데에 극좌보다는 극우 부상의 분석으로 이동되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