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과 죽음

by 염홍철


지금은 이미 작고하셨지만, 제가 젊은 교수일 때 원로 심리학자 한 분과 깊은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 당시 70대인 그분은 가끔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을 초월한 듯이 말씀은 하셨지만, 내심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은 “죽음은 잠을 자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 듯이 죽음도 고통 없이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뒤에 스토아 철학자들이 죽음을 ‘자연스러운 휴식’으로 이해하였고, 노교수가 말한 것처럼 죽음은 매일 밤의 잠처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잠과 죽음의 유사성에 대해 나옵니다. 즉 잠의 신 ‘히프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형제라는 것이지요. 이 신화는 인간 경험 속에서 죽음과 잠의 유사성을 지적한 것이지요. 힌두교나 불교에서의 윤회 사상도 죽음을 하나의 ‘긴 잠’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의식이 끊기지만 다시 깨어나듯이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성서적 표현으로는 신약성경에서 죽음을 가리켜 “잠들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혼은 즉시 하나님 앞에 가지만, 몸은 부활의 날까지 ‘잠든다’는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절대적 소멸이 아니라 다시 깨어날 것을 전제하는 은유적 언어인 것이지요.


이렇게 잠과 죽음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둘 다 의식의 중단 상태이고 매일 경험하는 잠을 통해 인간은 죽음을 연습하거나 은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교수가 저에게 들려준 죽음 이야기도 같은 논리였을 것입니다. 잠은 일시적이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근본적이고 최종적인 전환입니다. 종교적으로 죽음은 ‘무의식 상태’가 아니라 영혼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에서의 ‘영면’은 일반적인 수면과 같은 생리적 기능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는 수면인 것입니다.


이렇게 잠과 죽음을 연결하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잠은 매일 돌아오는 작은 죽음이고 죽음은 한번 맞이하는 큰 잠이지요.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죽음은 생리적 수면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는 상징적 상태를 믿는 것입니다.

keyword
염홍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66
작가의 이전글포기, 포용 그리고 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