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과거보다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일반론입니다. 이것은 1970년대에 발표된 ‘미래의 충격’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주장으로부터 시작되었지요. 앨빈 토플러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개인과 사회가 충격을 받고 있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이러한 주장들이 줄을 이었지요. 특히 독일의 사회학자 로사(Hartmut Rosa)는 현대사회의 핵심 현상은 “사회적 가속”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기술 혁신, 생활 속도, 사회 변화의 속도가 서로 순환 작용을 하면서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일반론을 부정하면서 ‘모든 것이 속도를 줄이고 있다’라는 대니 돌링 (Danny Dorling)의 주장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니 돌링 교수는 ‘대(大) 가속’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류가 20세기 중반까지 ‘가속’의 시대를 겪었지만, 그 이후로는 많은 분야에서 성장률이나 변화율이 둔화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구 증가율, 출산율, 1인당 GDP 성장률, 기술 혁신의 속도 등이 과거 대비 지금은 느려졌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의 둔화’ <Slowdown>이라는 저서를 최근에 출판하였지요.
전 세계 출산율이 과거 수십 년 동안 빠르게 떨어졌고, 인구 증가율 역시 정점을 찍고 하락 또는 안정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가 단지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출산율 하락은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 자율성 증가, 삶의 선택폭 확대 등을 반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출산율 하락이나 인구 구조의 변화는 돌링이 제시한 ‘인구 속도의 둔화’ 패턴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한국처럼 빠른 변화와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많은 쟁점을 낳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 GDP 성장률이 1950년대 이후 최고치를 찍고 점차 둔화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보이는 기술 혁신의 변화는 과거 2차 산업혁명기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는 논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둔화 속에서 그는 무한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사회는 이제 속도를 줄인 상태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단순히 성장이 멈췄다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왜 그것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둔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주장에 대한 회의가 존재합니다. 과거 성장이 둔화한 시기에도 불평등이 악화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속도가 느려질수록 평등해지고 삶이 나아진다는 그의 지적이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즉 둔화 자체가 자동으로 좋은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비판입니다.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줄곧 급격한 성장에 대한 논의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돌링의 주장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 회의적인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