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는 쓰러져야 하고, 모든 꽃은 죽었다.
곡식은 이미 거두어졌고,
자갈밭에는 메추라기만 남아 달린다.
그러나 종달새의 노래는 이미 멀리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눈길 속에서 배운다.
눈비와 구름이 깔린 11월의 세상에서
슬픔도 또 하나의 아름다움임을.”
“조용히 거울을 넘겨 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올해도
또 가지 끝에 남아 있다
떨어진 나뭇잎처럼
의미 없이 지나가게 될 11월”
순서대로 엘리자베스 스토다드, 로버트 프로스트, 이해인, 윤보영이 쓴 시입니다. 어때요? 11월을 느낄 수 있으신가요?
11월은 마지막 전의 달 즉 시간이 소멸을 예고하는 시기로 자주 등장합니다. 가을이 거의 다 지나고 겨울의 기운이 스며드는 경계의 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시인들은 ‘모든 것이 떨어지기 전의 순간’, ‘조용한 죽음의 연습’으로 11월을 표현했지요. 그러나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에서의 11월은 ‘수능의 달’로 기억됩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 또는 불확실한 미래 앞의 정적(靜寂)이 상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3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는 11월은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11월은 국화의 달입니다. 국화는 추모와 성숙 그리고 고요한 아름다움을 상징하지요. 그리고 국화는 ‘기억의 꽃’입니다. 찬란한 10월도 아니고 왁자지껄한 12월도 아닌 11월은 조용한 겨울의 대기실이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