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안의 두 얼굴

by 염홍철


우리는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난다. 밖에서는 냉혹하고 비정하며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집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이자 자상한 남편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그 모습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것은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여러 장면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면서도, 친구 앞에서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낯선 사람에게는 무심하면서도 가족에게는 한없이 다정해집니다. 우리는 하나의 일관된 존재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이지 않은가요?


문제는 그 ‘차이’의 크기입니다. 그 차이가 작을 때는 사회적 역할의 다양성 정도로 이해되지만, 그 간극이 커질수록 우리는 그것을 ‘이중성’이라 부르지요. 특히 그 한쪽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면, 그 모순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그 이미지와 충돌할 때, 우리는 행동을 바꾸기보다 그 의미를 바꾸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라는 말로 변명하지요. 그렇게 해서 한 사람 안에서 서로 다른 기준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게 분리되지 않고 또 그것을 용인하지도 않습니다. 밖에서의 태도는 결국 안으로 스며들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언젠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도 반복됩니다. 인간의 성품은 장소에 따라 완전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다만 드러나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의 삶을 여러 방식으로 변명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얼굴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그 사람은 좋은 아버지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을 지는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사적 선함이 공적인 악을 덮을 수 없다는 기준이 세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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