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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Apr 07. 2024

공정과 능력주의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욜로*’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 40대 초반의 하완이라는 작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내어 화제의 중심이 된 바 있습니다. 하완 씨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에서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았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를 인용하면서 책을 열었는데, 책의 마지막 줄은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저자는 인생에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도 있으므로 인생을 노력 대비의 효과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좌절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하완 씨의 ‘노력의 역설’을 떠올립니다. 그러던 차, 올해 초 어느 중앙 일간지에서는 작년에 이어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과 능력주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능력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기회의 평등함’이나 ‘과정의 공정함’에 대부분 젊은이는 부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기회의 평등함은 71.8퍼센트가 잘되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고, 과정의 공정함은 76.9퍼센트가 부정적으로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 정부 시 했던 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두 젊은이의 의견을 요약하면,


- “개개인의 능력만큼 대접받는 ‘능력주의’에 찬성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누군가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 “‘능력 있는 부모님’ 같은 ‘타고난 환경’을 따라잡는 건 노력만으로 힘들 거로 생각해요.”였는데 대체로 능력주의를 긍정하면서도 현실에서 공정하게 구현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공정과 능력주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저명한 학자 2명의 견해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능력주의라는 용어는 1958년 마이클 영이 <능력주의 등장>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마이클 영은 당시 이미 능력주의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라고 경고했으며,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만 쌓는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더 이상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저서를 통해 “능력주의 아래서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현대 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승자들 사이에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오만과 뒤처진 사람들에게 부여가 된 가혹한 잣대는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굴욕을 주는 능력주의의 민낯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샌델은 “겸손하지 못한 엘리트의 태도가 대중의 분노를 샀고 포퓰리즘의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하면서 이것이 트럼프의 등장 요인이다.”라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하면 된다.”라는 공통의 신념이 무자비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해결책도 제시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운’이 주는 능력 이상의 과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인드로 연대하며, 일 자체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원론적인 해결책이지만 충분한 대안이 됩니다.


  능력주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도 능력주의의 폐해가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으므로 이에 따른 공론화가 필요하고, 한계는 있으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요구됩니다. 능력주의 폐해란 부의 양극화, 교육·문화 세습의 심화, 승자들의 오만 등이 되겠지요.


YOLO,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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