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회사 탈출과 그 요건
절대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2017년 12월 어느 늦은 밤, 스트레스로 인해 스펀지처럼 축 쳐진 몸을 끌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 정도면 직장생활 할 만큼 했지’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누운 채로 내 자산 현황을 대강 계산해봤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소유 오피스텔을 월세로 내주고 나는 전세를 구해서 나간다면 매월 두 채의 집에서 나오는 월세를 합해서 140만 원을 꾸준히 받을 수 있다… P2P금융 투자로 매월 들어오는 이자 수익도 월 10만 원 정도 있다… 합하면 고정 월수입은 약 150만 원… 나와 고양이 두 마리의 생활비는 한 달에 100만 원이면 족하다… 대출금도 없다… 그러면 당장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이 없다 해도 살아갈…… 어라? 되겠는데…? 된다!!!
그리 어렵지 않은 산수였다. 나에겐 지난 17년간 쥐꼬리만한 기자 월급을 아끼고 모아 굴려서 마련해둔 매달 월세 나오는 원룸 아파트 하나, 내가 거주하는 오피스텔 하나가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비상금과 몇 년 동안 꾸준히 사 모아서 매년 배당금을 짭짤하게 받는 주식도 꽤 있었다. 빚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순자산 상태에, 퇴사하면 현 직장을 6년 근속한 데 따른 퇴직금도 나올 예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경솔한 건 아닐까? 문득 걱정이 되어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회사 그만두고 앞으로 월세로 생활하면서 작가 겸 번역가로 인생 후반생을 사는 준비를 해나가면 어떨까? 어차피 쉰 살 넘으면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보니 이렇거든. 언니야, 내 계획이 무모해보이냐?
-음… 무모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가능할 것 같다야.
전업주부인 언니는 모험을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언니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내가 막연히 낙관적으로 감행하는 모험은 아니구나,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하루를 더 생각해봤다.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던 대로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꽤나 오래 묵혔던 급여생활 탈출 계획이었다. 내가 20대 후반부터 생각해왔던 인생 후반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10년차가 되기 전에, 차장을 달기 전에 회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떠나 자유인이 된 것은 17년차 기자 경력을 꽉 채운 시점이자 차장 직급 팀장이던 시기였다. 그 때 이런 계획을 현실로 만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회사 탈출 자금’이 확실하게 마련된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