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회사 탈출 자금, 즉 월 150만 원을 창출하는 시스템이 완성된 것은 퇴사 시점보다 1년 이상 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시스템을 가동해야겠다고 결심할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전혀 자각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모으고 투자하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회사 탈출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미리 밝혀두지만 엄청난 거액이 아니다. 2019년 5월 현재 전체 자산은 6억 원이 조금 안 되는 것 같다. 부자들이 본다면 웃어넘길 수도 있는 규모일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 평균이 4,060만 원이라는 통계가 있던데(2018년 8월 잡코리아 조사),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연봉 1,800만 원으로 시작해서 17년차가 될 때까지도 연봉을 5,000만 원 이상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내가 해낸 결과물이 정말 자랑스럽다.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이 정도를 만들어 낼 수 있고, 1차 은퇴를 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를 이번 기회에 해보려 한다.
자산을 일군 과정을 돌이켜보면 초반에는 꽤 지루한 저축과정이 있었다. 스물네 살 때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간 나는 월급을 받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100만 원을 뚝 잘라서 적금에 넣었다. 첫 월급이 160만 원이었던 1년차 때부터 그랬다. 1년이 지나 약간의 이자와 함께 1,200만 원이 생겼는데 이 원금과 이자를 그대로 1년짜리 정기예금에 묶어놓고 다시 1년짜리 100만 원 적금을 새로 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몇 년을 반복하니 큰돈이 모아졌다.
사실 나는 첫 직장 1년을 다니며 모은 돈으로 용감하게 퇴사하고 창업했다가 넉 달 만에 홀랑 날리는 비극을 맛본 사람이다.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언론고시를 치르고 새 직장에서 빈손으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스물여섯 살 때부터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 생활을 3년 정도 했다. 월세를 내면서도 적금을 계속해서 목돈 3,000만 원이 모였을 때 은행에서 대출 2,000만 원을 받아서 드디어 처음으로 보증금 5,000만 원짜리 전셋집에 들어갔다. 매월 내는 대출이자가 월세보다 작았기 때문에 대출을 받았다. 마이너스통장으로 받은 대출이어서 적금 붓듯이 마이너스통장에 매월 160여만 원 이상 갚아 나갔고 2년 전세 계약기간이 지나자 마이너스대출을 다 갚은 데다 추가로 2,000만 원을 더 모아 내 종자돈은 7,000만 원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에 이사한 집은 6,500만 원짜리 전세 원룸이었다. 거기서도 100만 원 적금을 반복했다. 보증금을 제외한 비상금이 2,500만 원 정도 마련됐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작은 부동산을 한 채 샀다. 매도가격 1억 원에 나온 16평 원룸 아파트를 전세 8,000만 원을 끼고 그야말로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산 것이다. 서른두 살이었던 2008년 7월의 일이다. 처음으로 했던 부동산 매매계약이어서 덜덜 떨면서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 집 시세는 1억3,000만 원 정도였는데 그 동네 집값을 2년 이상 꾸준히 지켜보며 매물을 찾다가 급매로 1억에 나온 것을 운 좋게 만나 싸게 매입할 수 있었다. 언젠가 입주하겠다는 생각으로 장만한 나의 첫 집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적금과 예금을 반복하는 생활을 이어갔고, 전세살이는 계속했지만 계속 늘어난 저축액에 힘입어 이사를 할 때마다 계속 보증금을 높여 거주환경도 개선했다. 경력이 쌓이고 직장을 두어 번 옮기며 연봉이 올라가면서 자금 모이는 속도는 조금씩 빨라졌다. 그러다 서른네 살이었던 2010년 여의도에 있는 20평짜리 오피스텔을 매입해 8년을 거주했다. 앞서 매수했던 집은 세입자 계약기간이 한참 남아있어서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나는 오피스텔 전세나 매매 중에 적당한 것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때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님이 찾아서 보여준 오피스텔의 가격과 위치가 괜찮아서 매수를 하게 됐다. 그 당시에는 그 지역 전세나 매매 가격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던 시기였다. 그리고 전에 전세 8,000만 원을 끼고 매수했던 원룸 아파트는 매년 보증금이 1,000만 원씩 오르고 있어서 여의도 오피스텔을 매수할 때는 저축해서 모은 돈과 받아둔 전세보증금을 함께 활용할 수 있었다.
여의도에 사는 동안에도 치열하게 저축하고 투자하며 원금을 불려나갔다. 먼저 매입해서 전세로 운영하던 원룸 아파트를 앞으로 가능하면 월세로 돌려야겠다 싶어서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1억 3,000만 원을 탈탈 털어서 전세 줬던 원룸 아파트를 월세로 전환한 시기가 2016년 11월이었다. 1년간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70만 원으로 운용했는데, 1년간 월세 수익은 840만 원이나 됐다. 현금을 창출하는 시스템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한 게 바로 이 때였다. 가난한 직장을 다니다 보니 연봉이 몇 년간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게는 월세라는 추가 수익원이 있었으니까.
주식으로도 몇 년 간의 수익을 다 합하면 3,000만 원 정도 번 것 같다. 주식은 6년차 기자였을 때 증권업계 출입을 시작하면서 주식시장 이해를 높이는 차원에서 계좌를 튼 게 시작이었다. 100만 원 정도로 개별종목 매매도 해보고 적립식 펀드도 몇 개 가입하면서 서서히 주식시장을 배워나갔다.
그 때는 따로 은행에 예금과 적금을 하지 않고 급여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여유자금을 배당주 펀드, 지주회사 펀드, 성장주 펀드 등 적립식 펀드 세 종류에 나눠 가입하고는 분산투자 원칙을 지켰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초짜투자자였다. 가입한 펀드의 유형이 다양하더라도 펀드에만 여유자금을 전부 불입하는 것은 곧 현금자산을 몽땅 주식으로만 구성하는 행위임을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당시 인기를 끌었던 모 운용사의 주식형 펀드에 거치식으로 100만 원을 넣어봤다가 몇 달 만에 원금이 80만 원 정도로 줄어드는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잃지 않게끔 투자운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그 무렵 살고 있던 원룸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보증금을 더 높여 이사를 하려고 모든 펀드를 해지해 보태기로 했는데, 주식시장 분위기가 안 좋던 시기라 원금에서 20% 정도 손해를 감수하며 환매를 했다. 그 때는 손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시장은 그보다 더 추락해서 결과적으로는 기막힌 타이밍에 손절매를 한 셈이 되었다. 이때까지는 내 투자실력이 여느 평범한 주식투자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
다만 CMA(자산관리계좌)나 특판 RP(환매조건부채권) 같은 틈새금융상품을 보는 눈은 이 시기에 생겼다. 증권사들이 새로 계좌를 만드는 고객에게는 확정금리 연 4%로 1년간 1,000만 원을 맡길 수 있는 특판상품용 CMA나 RP를 많이 내놓던 시기였다. 대부분 기자들은 업무에 바쁘다보니 이런 상품이 나왔다는 보도자료가 들어오면 간단하게 기사를 쓰고는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는데, 나는 이런 상품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쓰고 나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해당 증권사 지점에 가서 비상금을 털어 특판 CMA나 RP에 가입하곤 했다.
몇 년 후 투자교육연구소로 이직하면서 주식 본질가치를 평가하는 방법과 가치투자 개념을 비로소 제대로 배우기도 했다. 연구소 다닐 때는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가치투자 아카데미 강의를 실컷 들었다. 직원이었기 때문에 모든 수업은 감사하게도 공짜였다. 평일 퇴근 시간 이후나 토요일 하루 종일 진행되는 수업이어서 사생활이 부족하긴 했지만 필요한 공부를 원 없이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보니 잃지 않게 해주는 투자운은 최근에도 한 번 있었다.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한 직후였던 2018년 1월 중순경, 살던 오피스텔을 월세로 내놓고 나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할 계획이어서 내 전세보증금에 보태려고 주식을 모두 팔았는데, 2012년 11월부터 야금야금 사서 모았던 3개 종목의 주식은 그 무렵 매수 원금이 총 3,000만 원 정도였고, 2018년 1월 중순 기준 그 주식들의 시장 가치는 약 5,000만 원으로 불어나 있는 상태였다. 그 주식으로 매년 배당금을 100만 원 정도 받았던지라 매도하면서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후 주식시장에 큰 조정이 오면서 주가가 뚝 떨어졌던지라 아쉬움은 이내 안도감으로 변했다.
핀테크가 개화하며 국내에 도입된 P2P(개인간)금융 투자로도 지난 2년간 월 10만 원 전후의 쏠쏠한 수익을 벌었다. 1년이면 120만 원 정도 되는 수익금으로, 세후수익률로 계산하면 연간 8% 정도였다. 나는 1,000만~1,500만 원을 여러 P2P금융 중개업체에서 4~6건 정도로 나눠 투자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투자케이스를 겪으며 P2P금융 시장을 배워나갔다. 기자로 일하며 17년 동안 기업과 비즈니스를 분석하는 훈련을 해온 데에다 투자대상과 중개업체를 꼼꼼히 선별한 덕분인지 P2P투자에서도 나는 원금과 이자를 날리는 사고는 한 번도 겪지 않았다.
나의 모든 투자 밑바탕에는 근검절약하고 저축하는 생활습관이 있다. 얼마 전 내가 이사를 할 때 도와주러 왔던 친한 대학동기가 내 책상을 보고는 이걸 여태 쓰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 다닐 때 재활용센터에서 새것 같은 중고품으로 산 책상을 두고 한 얘기였다. 그 때가 스물두 살이던 대학 3학년이었으니까 이 책상은 21년째 쓰는 것이다. 나야 멀쩡하니 계속 쓸 뿐이다. 책상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몇 년 전에 흰색 페인트를 사다가 직접 칠해서 리폼은 한번 했다. TV와 유선청소기도 10년 됐고, 책꽂이 대용으로 쓰는 MDF 박스들도 10년 넘은 것 같다. 이직을 하고 연차가 올라가며 연봉이 상승해도 기본 생활비는 1년차일 때나 17년차일 때나 비슷하게 100만 원 이하로 썼기 때문에 연봉이 오를수록 저축액이 커졌다.
비싼 명품이나 자동차 없이 40살까지 버틴 것도 절약과 저축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처음 샀던 자동차는 2016년 11월에 100만 원 주고 산 16년된 구형 SM5였는데, 1년 정도 경치 좋은 곳에 드라이브 다니며 재미있게 잘 탔지만 2018년 2월에 이사하면서 새 집에 주차장 문제로 스트레스가 있어서 폐차 방식으로 처분했다. 폐차할 때도 역경매 방식 폐차도우미 앱을 활용해 가장 좋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골라서 정리했다.
절약과 저축이 몸에 배어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린고비처럼 돈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며 살지는 않았다. 나는 에일맥주 덕후, 커피 덕후, 크로스오버 음악 덕후, 마블 영화 덕후, 고양이 덕후인지라 나름 적당한 선에서 재미있게 적절히 쓰며 살았다. 또한 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것은 선배인 자의 도리이니 매월 20여만 원씩 후배들에게 지갑을 열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집행부 멤버나 총무를 맡은 모임도 여러 개라 때 되면 모임회비도 좀 나간다.
아무튼 써야할 때는 썼지만 쓰지 말아야 할 곳에는 절대로 쓰지 않았고, 투자에서는 초보시절 원금을 크게 잃지 않으면서 투자요령을 익힌 후 원칙을 지키며 열심히 굴리고 불린 것이 박봉으로도 회사 탈출 자금 창출 시스템을 비교적 빨리 만든 비법이라면 비법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