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렌/스콧 니어링 부부
소비에 끌려 다니는 인생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산다는 것은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면 그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기 자급자족을 모토로 1년에 절반만 일하고 여유시간을 최대한 누리며 먹고사는 것을 충족하는 정도로만 소득을 올리고 잉여소득은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어느 채식주의자 부부가 무려 20년간 이런 삶을 뚝심 있게 살아간 후 남긴 기록이 있다.
남편은 스콧 니어링, 아내는 헬렌 니어링으로,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교수 출신 도시민이었던 이들은 남편이 50세였던 해인 1932년 미국 버몬트 주 숲으로 이주해 요즘 말로 ‘귀농’을 했다. 20년을 당초 계획한 대로 조화롭게 살았던 이들은 그 20년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며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내용을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이라는 책에 상세히 기술했다.
이 책은 귀농 후 여유로운 삶을 그리는 낭만에 머문 책이 아니다. 이들은 시골 생활에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충실히 따랐다. 큰 틀의 원칙은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짓고 땅을 일궈 양식을 장만하며, 채식하고, 먹고살기 위한 노동은 하루에 반나절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쓰며, 한 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기로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돌보는 데 얽매이지 않도록 가축을 기르지 않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으며, 기계에는 최대한 의존하지 않고, 최저 생계비를 마련하면 남은 채소나 과일은 이웃과 나누고, 하루에 한 번씩 철학과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명상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으며 간소한 식사와 깨끗한 양심, 깊은 호흡 등도 목표로 삼고 실천했다.
이들의 생활은 한적한 시골이던 버몬트가 개발되면서 이런 조용한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어져 메인 주 다른 시골로 이주할 때까지 스무 해 동안 이뤄졌는데, 이 책의 번역자 류시화 시인이 표현한 바에 의하면 ‘단순하면서도 충족된 삶’이자 ‘여느 수도자를 넘어서는 삶’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며 월급중독과 소비로 점철된 도시민의 편견을 일찌감치 깨뜨린 후 이윤 추구를 모토로 하는 경제에서 멀찍이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이 부부의 인생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따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부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거나 배우고 싶어 버몬트 숲 속 농장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는데, 열의 아홉은 혀를 내두르며 이렇게 말하며 떠났다고 한다.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것은 좋은 생활방식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그이들에게는 훌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 생활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니어링 부부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부부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우리가 그이들보다 건강에도 좋고 값도 덜 드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인정했다. 우리가 자기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를 누린다는 사실도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이들 스스로는 이런 생활에 따를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은 문명이 주는 흥분, 분주함, 매혹, 편의 시설, 마취제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이 이곳에 눌러 살았다면, 생계만 겨우 해결할 뿐 새 물건을 살 여유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맞닥뜨리고는 괴로워할 것이다.
겉만 그럴듯하지 오래 못가는 물건들을 늘 새로운 발명품이나 신제품이라고 둘러치고, 새로 광고하는 상품들과 바꿔야 한다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이 우리같이 사는 삶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니어링 부부의 지적처럼 열의 아홉에 해당되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렇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내공이 단단하지 않다. 속세에서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은 그런 이유로 고생해서 받은 월급을 아끼고 모아서 굴려 만든 자금으로 최대한 회사를 탈출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