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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ul 03. 2019

우리에게 백수 마인드를 허하라

노예들이 힘든 일을 대신 해준 덕분에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나 로마인들, 가깝게는 조선의 선비들도 온갖 우아한 상념을 할 시간이 있었다. 회사 탈출을 하고 나니 내게도 그런 시간이 생겼다. 내게는 노예 대신 월세를 만들어주는 작은 집 두 채가 내게 그런 시간 사치를 할 여유를 제공했다. 물론 나도 놀지는 않는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지 않은가. 틈틈이 번역도 하고, 새 책 작업도 하고,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도 쓰고, 몇몇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생각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회사 다닐 때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어느 날 후배 기자와 안부 통화를 하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지친 목소리였다. 하긴 나도 회사에서 팀장 할 때는 그랬다. (그 후배는 내가 회사에서 탈출하면서 내 다음 서열이었던 죄로 후임 팀장으로 승진했다. 내 덕분에 더욱 바빠진 것인데 내 죄(?)가 크다. 사실 회사 다닐 때 가장 행복한 시절은 팀장 바로 아래 차석일 때다. 차석은 경력이 쌓여 업무는 숙련된 조교의 경지에 올라 매우 편안한데 편집국장이 주재하는 데스크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아닌지라 책임지거나 욕먹을(?) 일도 없어서 마음도 편하다.)


회사 다닐 때는 이상하게 피곤과 스트레스가 몇 배 이상 더 사람을 짓누르는 것 같다. 퇴근하고 나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고 TV 리모콘만 간신히 누르는 생활을 했는데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퇴근 후 소파와 한몸이 되어 리모콘만 간신히 누르는 우리의 자화상 [자료:픽사베이]


그런데 지금은 노동량은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한데, 뭔가 피곤함은 확실히 덜하다. 프리랜서 글쟁이가 된 후로 나는 내키는 때에 따라 낮에도 쓰고 밤에서 쓰고 휴일에도 쓴다. 거꾸로, 일하기 싫으면 평일에도 논다. 내 맘이다. 피곤을 대하는 내 몸의 변화는 아마도 내가 주도한, 내가 원해서 택한 일이냐, 회사가 준 일이냐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회사에서도 개개인의 자율성을 강화해준다면 이런 피곤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역발상으로 놀라운 성과를 올린 위대한 CEO들을 분석한 『현금의 재발견(원제:The Outsiders)』(윌리엄 손다이크 지음)에 나오는 CEO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현장 담당자들에게 자율성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는 것이다. 본사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최소화해서 자율성을 최대화한 결과 업무 효율도 오르고 퇴사도 덜하고 아무튼 직원과 회사, 주주까지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을 믿지 못하는 감시의 정서, 노동력과 급여를 일대일로 거래하는 동등한 거래관계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월급을 주니 너는 나의 노예’라는 사고방식이 기본 장착된 기업들에서는 자율성 보장이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그렇다. 백수 마인드란 회사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나를 최우선으로 나의 안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아닐까. 회사가 우리의 인생을 지켜주지 않는데 왜 우리는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하나. 틈틈이 딴 생각을 해둬야 우리가 산다. 우리에게는 백수 마인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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