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은 노는 것인가 일하는 것인가. 일찍이 인간의 본성을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정의한 요한 하위징아의 연구가 있긴 하다. 하지만 ‘놀이는 인류 문명의 기반’이라고 역설한 하위징아의 거창한 진단보다는 어느 학자가 ‘놀이’라고 단언하며 우스갯소리처럼 간략하게 얘기한 풀이가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일하면 피곤해지는 것이 그 증거’라나. 아무튼 핵심은 일하되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을 돈 때문에 그저 노동력 제공으로 벌어들이는 행위를 하면 지루하고 피곤한 것이고 그 일도 즐거이 할 수 있게 되면 덜 피곤하다는 것이다.
회사 탈출을 하면 처음엔 놀고 싶고 실제로 신나게 논다. 하지만 영원히 놀 생각이라면 회사 탈출하는 시기를 되도록 늦춰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놔야 놀 때 정말로 신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돈 없이 놀겠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노는 건 별로 즐겁지 않다. 불안해지니까. 결국 돈 떨어지면 굶을 수밖에 없으니까.
배고프면 놀 수도 없다. 주거비와 밥값 정도는 해결이 되어야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법이다. 놀려면 일하라. 그런데 일만 하면 놀 시간이 없다. 인간 존재 최대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래서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일하면서도 왜 일하는지, 언제까지 할 건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건지 등등 말이다. 이유와 목적지를 알면 덜 피곤하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으면 괴로워진다는 얘기가 있긴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 여행작가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불행할까? 기자는 기사만 안 쓰면 가장 좋은 직업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나는 기자로 일할 때 기사 쓰면서 즐거울 때가 많았다. 멋진 사람(유명한 사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을 인터뷰하고 돌아와 인터뷰 기사를 쓰거나 작지만 강한 기업을 소개할 때도 나는 늘 즐거웠다. 기사에 내 필력을 마구 발휘할 수 있을 때도 좋았다. 그 순간 나는 일한 것인가 논 것인가.
본질에 충실하게 일할 때 나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의미 없이 글을 써야 할 때나 컨디션 난조인 상사가 내게 화풀이를 할 때는 절망했지만. 요컨대 일은 즐거울 때가 많다. 문제는 그 일이 주는 의미 혹은 그 일을 둘러싼 환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