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ica Jul 12. 2019

고수가 강호에서 은퇴하는 법

식솔을 거느린 가장의 수고든, 제 한 몸 건사하는 싱글의 출근이든, 알바생의 시간제 근로든, 아무튼 밥벌이는 그 자체로 위대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일하고 사냥하는 행위에는 생명이 살아간다는 숭고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형태든지 ‘갑질’로 대표되는 직장 내 괴로움은 밥벌이의 위대함을 모욕한다. 우리가 회사 탈출을 꿈꾸는 가장 큰 원인이 어쩌면 이것인지 모른다. 사람과 조직에게서 받는 괴로움. 그래서 마음 편히 살고 싶은 마음에 조직 탈출을 생각하고 프리랜서 되기나 창업을 꿈꾸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함정은 있다. 프리랜서만 선언하면 우아하게 돈 벌 것 같겠지만 세상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돈이 제때 안 들어오는 것은 둘째 치고, 사람에게서 받는 괴로움은 거기에도 존재하기에.


19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동방불패>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강호(무림의 세계)가 싫어서 강호를 떠나려 하는 주인공 영호충에게 영화 속 고수 임아행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곧 강호인데 강호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칼만 버린다고 강호에서 자동 은퇴가 되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강호 탈출을 꿈꾸는 영호충에게 임아행은 "사람이 곧 강호"라며 지옥같은 현실을 일깨웠다.  [사진='동방불패' 화면 캡처]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정녕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순간 서로에게 지옥을 선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어딘가 혼자 은둔하면서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들처럼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강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하긴 자연인들도 버섯이나 나물, 꿀을 채취해서 산 아래 사람들에게 팔아서 돈을 버는 경제활동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긴 하더라만. 속세에서 벗어나 살고자 해도 완전히 세상과 연을 끊고 온전히 자연만 벗 삼아 살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것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회사 탈출을 꿈꿀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조직문화로는, 사람을 부품으로 쓰고 버리는 문화에서는, 갑질을 당연시하는, 월급만 주면 직원을 머슴처럼 여기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회사를 탈출하고 또 탈출할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으니까.


얼마 전 우연히 <한국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젊었을 때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고향인 어느 바닷가로 돌아와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직업을 바꾼 한 중년 사내의 얘기가 생각난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그 어부의 배에 함께 오른 PD가 “직장 다니다가 어부 생활을 하는 게 힘들지 않으시냐”고 묻자 어부는 시크하게 대답을 툭 던졌다. “지금이 좋아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되니까. 직장생활하면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고기 잡는 일은 눈치 볼 것도 없고.” 그야말로 자유인의 스웨그(Swag:힙합에서 나온 말로 대중문화에서 자기만족, 자아도취, 자유로움, 가벼움 등을 뜻하는 말)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하는 인간 vs 일하는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