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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un 21. 2019

퇴사도 영혼을 담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퇴사하겠습니다』를 보면 회사 탈출의 또 다른 예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는 2017년에 번역돼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2016년에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혼(魂)의 퇴사』. 혼신을 다해 퇴사를 준비했다는 뜻인가 보다.


이나가키가 28년이나 근속했던 아사이신문에서 50세에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는 전형적인 파이어 족은 아니다. 치밀하게 장기간에 걸쳐 생활비 창출 시스템을 만들면서 회사 탈출을 준비하지 않아서다. 하지만 돈 문제를 제외하면 퇴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보는 관점, 그리고 ‘회사와 일과 나와의 관계를 재정비해보자’는 부분에서 회사 탈출러와 통하는 바가 있다. 



그는 대기업인 아사히신문에서 28년간 재직했기 때문에 퇴직금이 꽤 될 것을 믿고 퇴사할 용기를 낸 모양인데, 생각보다 아주 거액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퇴직금의 7분의 1을 국세 및 지방세로 떼어가 크게 놀랐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나가키는 아사히신문 지방총국 중 하나였던 다카마쓰 지역에서 일하던 중에 그 동네 친한 친구가 “네가 본사로 돌아가면 쓸쓸할 것 같은데 회사 그만두고 여기서 살지 그래”라고 하자 무심코 “50살까지는 안 돼”라고 했는데, 그는 이 말을 계기로 만약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게 됐고 조금씩 50세에 퇴사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일본은 정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옮기거나 스스로 퇴사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실제로 그가 회사에서 퇴직절차를 밟는 내용을 서술한 장에서는 아사히신문 총무담당 직원들이 퇴직절차를 거의 해보지 않아서 당황하는 모습이 나올 정도다. 


이나가키가 이후 회사 내에서 적극적으로 사이드 허슬(이 용어는 원래는 회사 밖에서 하는 ‘딴짓’을 뜻하지만 일상업무가 아닌 다른 일이라는 점에서 써봤다)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막연하긴 하지만 정년까지 버티지 않고 50세 퇴사라는 계획을 세운 뒤로 그는 회사와 일, 생활, 소비, 인간관계 등을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는 다카마스 총국장 시절 마감시간 한 시간 앞당기기 운동을 벌여 성과를 냈고, 사회부 데스크 시절에는 본사 이전으로 폐쇄가 결정된 사원식당 아저씨 아줌마들에게 ‘나홀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틈틈이 감사책자를 만들어드리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이 회사업무도 아니건만 개인시간을 할애해 기꺼이 편집, 디자인 등 감사책자 제작에 도움을 주는 것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고, 돈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즐거움이 뭔지도 알게 된다. 사이드 허슬을 진행하며 얻는 기쁨을 이나가키는 이때 제대로 체험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정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있게 인생을 살고자 용기를 내어 퇴사를 감행하게 된다. 


직장인은 직장에 갇힌 죄수가 아니다


이나가키는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회사를 인생 학교 삼아 쓴맛 단맛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후 수행이 끝나면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나가키의 퇴직금은 넉넉하지 않았으니 그는 퇴사 후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었을까? 그는 이 부분에서도 씩씩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였다. 그는 일단 퇴직금으로 어떻게든 해나가면서, 가끔 기고 등을 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어딜 가나 일손이 부족해 구인광고가 넘치니 제 아무리 요령 없고 경험 짧은 중년 여자라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쓸모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힘”이라면서 말이다. 


또한 앞으로 일본은 인구 감소와 빈집 증가 문제가 커질 전망이니 비싼 월세를 지불하지 않고도 빈집을 고쳐서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돈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나 자신의 상식을 얼마나 뒤집을 수 있느냐”라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이나가키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 계획’을 수립하고 지구와 환경을 생각해 절약하는 생활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는 놀랍게도 에어컨, 냉장고,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청소기, 선풍기, 온열기 같은 전자기기 없이 살고 있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소박함의 결정체. 생활비에서 전기요금 절약은 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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