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나홀로 여행에 대하여

● 일곱 번째 하루

by 박유미

늦은 밤까지 이어질 줄 알았던 휴일 근무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갑자기 시간을 용돈처럼 덜컥 받은 느낌이었다. 무작정 314번 버스를 타고 은행동으로 갔다. 성심당에 들어가 넘실대는 인파 속을 서성이다가 방금 구운 빵을 실은 카트가 지나가기에 불쑥 이름 모를 빵 하나를 꺼내 담았다. 우산을 한 손으로 받치고 봉지를 벗기니 따끈하게 녹은 버터 향기가 달큼했다. 한두 방울 뿌리던 비가 점점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하여 봄비의 정취가 좋았다. 비를 맞고 싶어서 걷고 또 걸었다. 토도독 우산을 치는 빗소리와 사각사각 패스트리가 부서지는 소리에 발을 맞추니 혼자서도 흥이 나는 우중산책.


은행동이라면 으능정이와 목척교를 닳도록 거닐어 꽤 익숙한 동네라 생각했는데 선화초등학교 인근으로 다가가니 처음 보는 골목들이 이국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다 무너진 폐허 같은가 하면 여전히 사람이 드나들며 안에서 영업을 하고 있고, 옛 향취가 담긴 근대 문화유적 같은가 하면 키스 해링과 아디다스의 '힙'한 이미지들이 점령한 골목.


구석구석을 한참 누비고 마음에 쏙 드는 카페까지 발견했다. 엊그제 중고서점에서 산 스켑틱 과월호를 읽으며 결국은 밤이 되어서야 행복했던 짧은 여행을 마치고 귀향했다. 버스에 앉아 빗방울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어룽거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풍요로운 홀로 여행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정해진 경로는 없더라도 GPS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 있는 지도 어플.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을 때 유용한 카메라 어플과 카톡.

시장 구경하다가 문득 살거리를 발견했을 때 쏙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벼운 가방.

핸드드립 커피나 카페라떼가 맛있는 카페(조용하고 재즈가 흐른다면 더 좋다).

카페에서 읽을 책 한 권.

낯선 곳에서 낯익은 것을, 낯익은 곳에서 낯선 것을 발견해내는 밝은 눈.

나의 속도로 나 자신을 이끌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할 줄 아는 소소한 마음.


혼자일 때 행복할 줄 안다면 함께일 때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일 때 행복할 수 있는 건 언제나 함께이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여행이 당신과 함께였던 곳들과 닮아서, 앞으로 당신과 함께 할 곳이어서 나는 홀로 있을 때에도 마음이 꽉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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