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덟 번째 하루
새벽 5시 반 출근이 잦아진 요즘, 틈새를 벌려 책을 몇 권 읽었다. 일본 만화 <중쇄를 찍자> 시리즈와 은유 작가의 <출판하는 마음>. 출판계의 현업 종사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현장감 있게 그려내는 멋진 책들이다.
출판은 항상 마음이 기울어지는 분야이다. 대학교 때도, 취업 이후에도, 지금도 여전히 책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지향이 마음속에 있다. 그것이 기획과 편집이든, 도서관 사서 업무이든, 직접 작가가 되는 것이든 말이다. 언론과 뉴미디어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분명히 그 연장이었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책들을 읽는 동안 내가 꿈꾸던 분야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며 두근거렸고 부러웠다. 다만 읽을수록 조심스레 스며오던 생각 하나가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를 덮쳐왔다. '내가 원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비껴가는 길로 나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한 권의 책을 독자에게 전달하기까지 현업자들이 하는 노력은 존경스러웠으나 출판계의 멋진 일자리들이 요구하는 헌신적인 삶의 방식이 나에게는 버겁게 느껴졌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일은 그 자체로 삶의 만족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둘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싶었던 나의 스물다섯 살 직장 생활을 생각하면 지쳐 떨어져 나간 탈출의 충격이 씁쓸하다. 일이 재미있어서, 일을 잘하고 싶어서, 일하는 내가 멋져서 일 이외의 삶은 잘 다루지도 못했고 잘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어린 내가 거기에 있었다.
글쓰기 조언들을 보면 일단 많이 써두라는데 선행되어야 할 기획과 후작업인 편집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한 발자국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획과 편집을 염두에 두지 않은 글쓰기는 그냥 일기잖아. 하지만 글거리를 모으는 것이 그날의 진정을 담은 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
지금 일하는 곳이 내 재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창조적인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자리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써나가는 나의 하루하루가 오직 나만이 구성할 수 있는 기획을 태어나게 하고 그동안 없었던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내 깜냥만큼 내 힘으로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나의 책은 이미 써져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