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 하루
계장님이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유미야, 너 봉사시간이 모자라니 따로 채워와야겠어. 그럴 리가 없다 싶었는데 올해 실적은 고작 3시간. 꽃동네에서 3박4일쯤 머무르다 오면 매번 몇십 시간이 채워져 있으니 봉사시간 귀한 줄 모르고 태평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봉사처를 검색했다.
입사 동기들을 이끌고 꽃동네에 갔던 지난겨울에 '나 이제 꽃동네에 오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하고 깨닫고는 마음을 놓았던 탓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음성에 다녀온 이후로 마음이 허할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찾아갔던 꽃동네. 나의 20대가 저무는 무렵이 되어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 그곳을 졸업할 수 있었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봉사시간은 어김없이 채워져야 한다.
봉사 실적이라는 동기는 불순하지만 그래도 자원활동(volunteering, 봉사보다는 자원에 초점을 맞추기)에 대한 내 애정과 신념을 반영하여 '돈 안 받아도 하고 싶은' 일을 찾다 보니 도서관 서가 정리가 눈에 띄었다.
관공서에서 모집하는 '대부분의 자원봉사'가 세금으로 인건비를 들여야 할 일을 봉사자를 통해 무료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의심은 물론 여전하다. 그러나 주민센터에 매주 새로운 꽃 화분을 기꺼이 가져다 놓으시는 선생님, 그리고 저장강박증 주민의 집을 기꺼이 치워준 자원봉사협의회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나의 쉬운 말로 그 가치를 뭉뚱그리는 것은 너무 자만한 것 같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날짜가 다가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주말 근무 중인 주무관님의 안내를 받아 중고등학생 친구들 사이에 섞여 서가 정리를 했다. 대학교 때 1년간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니 주무관님의 눈이 반짝이더니 800번대 서가를 통째로 맡기셨다. 40분 일하고 20분 쉬고 중간에 점심 잠깐 먹으니 8시간이 금방 지났다. 즐거우니까.
이 책 저 책 만지며 정리에 몰입하다 보면 갓 잠이 들 때처럼 무의식의 사고들과 만날 수 있다. 평온한 상태로 내면으로 침잠하는 생각들을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게 명상의 효과와도 비슷하다. 평소에 하는 생각들과는 조금 다른, 더 안쪽의 나에게서 끌어져 나오는 감정들과 판단들. 막연히 내부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러 책들을 통해 영감을 끊임없이 얻을 수 있어서 나는 서가 정리의 시간을 좋아한다.
이 일에도 적정한 인건비가 지출되는 게 맞겠지만, 내 손길 덕분에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이 더 쉽게 책을 찾고 더 쾌적하게 책을 고를 수 있다면 내 자원활동도 내가 존경하는 분들의 일들처럼 단순한 가치로 계산될 수 없으리라.
앉았다 일어났다 책 더미를 옮겨가며 한참을 일했지만 마음은 바깥의 봄 햇살 못지않게 가벼웠다. 하루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먼지가 까맣게 전 손을 번쩍 들어 기지개를 해도 뻐근할 만큼 피로가 몰려왔지만 말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주말 하루에 8시간씩 봉사를 신청하는 건 앞으로 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