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퇴근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순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업무 담당자가 유연근무로 일찍 퇴근해 내가 대신 수습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최소 30분은 걸린다기에 이미 정시퇴근을 놓쳐버린 내 모니터 속 시계를 힐끗 들여다보았다. 감기 때문에 목이 쉬고 온몸이 노곤노곤해 집에 가서 드러누울 생각만 하며 한참 전부터 들여다보던 바로 그 시계다.
수화기를 든 채로 머리를 도록도록 굴리며 일이 최대한 빨리 끝날 수 있는 방법을 짜내었다. '이대로라면 15분 안에 퇴근 가능', 꽤 쓸만한 방안을 제시했다고 만족하며 기다리는데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아뿔싸, 15분이 아니라 1시간이었다. 내일 아침에 바로 하시면 안될까요, 오늘 꼭 하셔야 하나요. 제가 꼭 필요해요, 좀 도와주세요. 원칙을 어긴 방식으로 처리를 해서는 안되고 수화기 너머로 사정을 들으니 외면할 수도 없어서 결국은 나의 편의를 조금 포기하는 편을 택했다.
푹 잠겨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손님을 맞고 일을 매듭지으니 바깥은 한밤중처럼 시커맸다. 경험을 되짚을 때 짜증이 났을 법한 상황인데 마음의 바다가 평평하게 느껴져 신기했다.
집에 오는 시내버스에서 내 마음의 파도가 언제 높아드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기사분의 격한 욕설이 귀에 꽂혔다. 끼어드는 차들과 허둥대는 승객들에게 화를 내느라 마음이 너덜해지실 것만 같았다. 내게 소리를 지르고 부당한 요구를 쏘아대는 손님들이 떠올랐다. 그런 손님과 부닥치는 날은 마음이 너덜너덜해서 점심시간에 볕 잘드는 동네카페로 도망가곤 했다.
어떤 바람이 불어올지 모르는데 내 안의 바다가 잠잠하기만을 바라는 건 억지이다. 그날의 나도, 버스기사 아저씨도 먹고 살다 보니 바람부는 대로 휘청이며 지냈던 걸. 그래도 내가 깊고 푸른 바다가 되어 안에 더 많은 것들을 품고 있으면 표면의 철썩임에 덜 움츠리지 않을까. 소심쟁이의 희망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