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언제 훈련일정이 생길지 종잡을 수가 없는 직업군인과 휴가기간을 맞추는 아주 간단한 방법. 그가 "나흘 후에 휴가 내기로 했어"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같은 날에 연가를 올리고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닿은 곳이 바로 여기, 순천이다.
밤새 기침하느라 기운이 쑥 빠져버린 나는 남편이 운전하는 내내 쿨쿨 잔 걸로도 부족해 숙소에 체크인하고도 서너 시간은 쥐죽은 듯 잠을 청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졸린 눈을 확인하던 남편은 내가 이른 저녁잠을 자는 내내 옆을 떠나지 않고 나를 보살펴 주었다.
푹 자고 기운이 솟은 보름달 아래의 밤에는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관광책자에 나오지 않는 골목과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우연히 재즈 연주를 듣고 유럽의 도자기들을 구경하고 동네 주민들의 밤 산책 코스를 따라나섰다. 희뿌연 기운이 죽도봉 꼭대기에서부터 점점 도시를 덮쳐오더니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천변을 거니는 정취가 특별했다.
한참 걸어다닌 탓에 피곤했는지 양치만 겨우하고 침대 에서 곯아떨어진 남편의 곁을 지키며 글을 쓴다. 내가 아까 낮잠을 잘 때 그가 그러했듯이. 서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말은 여행을 떠나오면 더 잦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