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집 근처 학원에서 밸리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을 채운다. 반절을 겨우 넘는 나의 출석률을 돌이켜보면 애초에 주3회 개근 계획은 무리였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나오라고 월수금 수업을 만드신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날은 직원 회식이 잡혀있어서, 다른 날은 배가 아파서, 혹은 감기 몸살 때문에 출석일수가 제자리걸음을 한다.
나도 걷기 말고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걸 알려준 벨리댄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잘하는 것은 아니고 '잘한다고 칭찬 받은' 최초의 운동이다. 나를 처음 인정해준 주군을 섬기는 마음으로 벨리댄스만큼은 왠지 배신하고 싶지 않다는 의리 같은 게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다. 칭찬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 유연성도 박자감각도 전혀 없는 나지만 꿈나무에게 물을 주는 마음으로 칭찬을 쏟아붓는 선생님이 계시다면 저절로 춤이 춰진다.
벨리댄스는 내게 전혀 다른 두 쪽의 감정을 안긴다. 배우러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것들의 뒷면에는 때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 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나면 소파 위에서 노곤해지는 몸이 내 안의 반동세력을 키워낸다. 아, 귀찮다. 근육과 지구력을 키워내서 그런 마음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을 때까지 단단해지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월수금 저녁마다 양가감정과 싸워야 할 것이다.
벨리댄스의 또 다른 이름은 글쓰기이다. 담임 선생님께 일기를 검사 받 듯 남편에게 쪼르륵 달려가 글 한 바닥을 내미는 내 얼굴에는 칭찬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다. 이런 철없는 나를 문장으로 대면하려니 얼굴이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쓴다.
요 며칠은 여행에 대한 글감이 머리 속에서 몽글몽글 생겨나와 버스를 타는 와중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이 놈을 어찌 글 그물로 붙잡을까' 궁리를 멈출 수 없었다. 시간만 생기면 얼른 써내려가야지 마음 먹는다. 근데 숙소에서는 씻고 자느라 바빠서 쓰기가 어렵고, 차 안에서는 멀미가 나니 어렵고, 집에 돌아오니 조카들이랑 놀아주느라 어렵고, 직장에 오니 손님이 끊이지 않아 어렵다. 글 한 줄 쓰는 나를 방해하는 것이 세상 가득인데, 아니나다를까 그 방해꾼들의 그림자에는 글로부터 멀리 도망가려는 내가 숨어있다.
"화장실 가는 척 하고 조금 써보고 한참 있다가 화장실 또 가서 마저 쓰면 되지요." 별 것 아니라는 듯 남편은 대꾸한다. 이것 참, 내 속을 들켜서 얼굴이 또 빨걔진다. 내가 할 일은 한 문장을 쓰고, 또 한 문장을 쓰는 일. 오후 7시 45분에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서는 일처럼 단지 그 한 걸음이 필요할 뿐인데 나 자신에게 거창하게 겁을 주었던 게 머쓱하다. 그렇지만 여기에 이 문장들을 쓸 수 있는 것 보니 칭찬을 한 번 더 받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