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읽기

2월 10일

by 박유미

집에 갖다 놓고 싶은 유혹이 드는 잘 뻗은 원목 탁자가 있는 카페에서 벗과 함께 유유자적 오후를 누리다가 돌아왔다. 친구는 프랑스식 자수를 마저 완성하기 위해 한 땀씩 공을 들이고 나는 수다가 뜸해지는 틈을 타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들어가다보니 내가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줄도 좀체 모르고 말이다. 오늘 만난 <떨림과 울림>은 물리학의 기본 개념들을 친절하고 아름답게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김상욱이라는 멋진 과학 저술가도 내게 소개해주었다. 올리버 색스를 좇아다니던 때처럼 앞으로 한동안은 김상욱이 쓴 책들을 찾아나설 것 같다.


좋은 과학책은 잘 짜인 소설과 진솔한 수필, 세련된 비평, 신랄한 르포의 미덕을 모두 흡수한다. 좋은 과학책은 곧 좋은 책이기에 사회과학과 인문학 서가의 어느 책과 비교해도 그 글의 만듦새가 뒤쳐지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과학책들의 자리에 점점 더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여 간다.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들, 어제 읽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처럼 뇌 과학을 다룬 여러 교양서들, 정기구독까지 하게 된 계간지 <스켑틱>, 랜들 먼로의 과학 그림책들, 우주의 깊이를 처음으로 머릿 속에 그리게 해준 <하루종일 우주생각> 등.


과학책 몇 권 읽어봤다고 온갖 과학 법칙들에 능통해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바라던 것 하나는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다. 원자력과 양자역학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붙은 이름의 전공을 거치고 평생을 과학자로 살고 싶어했던 사람,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어떤 방식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지 체험해보는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그는 어떻게 세상과 부딪쳐가는지 이해해 보고 싶었다. 덕분에 <퍼스트맨>을 보며 그가 느끼는 감동과 갖가지 유사과학을 향해 분출하는 분노를 조금은 더 공감하게 되었다.


일단 김상욱의 물리학 책들을 더 찾아읽고 나면 저번에 바로 반납해 아쉬움이 남았던 <지글지글 베이컨 굽는 냄새는 왜 그렇게 좋을까?>를 다시 빌려보고 싶다. 요리를 주제로 분자에 대해 다루는 책들은 여러 권 있지만 이 책만큼 직관적이고 다정한 화학책은 없는 것 같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처음 듣는 의대 강의>도 대기순번표를 뽑고 내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과학 전문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과학책 덕분에 설레는 날들이 이어지니 과학책 애호가 정도는 되리라고 자칭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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