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업무를 처리하다가 서류에 적힌 남편과 아내의 생년월일이 20년 이상 차이 나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연스럽게 동남아에서 온 결혼이주 여성의 가정이겠거니 짐작하게 된다. "도대체 이 남자분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스무 살 어린 이성을 사로잡을 수 있었지!" 하고 눈치 없이 감탄했던 적도 있지만, 그런 낭만적인 결혼은 미디어 속 연예인들에게 잦을지 몰라도 대전의 작은 동네에서는 거의 없다는 걸 이제 잘 알고 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받아 들고 26살 어린 아내의 이름을 확인하고 있어도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온 A는 내게서 생애 첫 주민등록증을 받아간 다음 날 가출 했다. 호리호리한 작은 몸에 순한 인상을 갖고 있는 그녀가 "언니, 주민등록증은 언제 나와요? 빨리 나올 수 있어요?"라고 물을 때까지 그저 새 신분증을 보고 싶은 기대감에 부풀었다고만 생각했다. 어설픈 관심이 만들어낸 순진한 상상이었다. 그 기대감이 탈출을 향한 설렘이었을 줄이야. 그녀가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국으로 건너오고 몇 년의 삶을 더 견뎌오기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짐작해보기에는 안온하게 ‘선천적 한국인’으로 살아온 내 경험과 인식의 폭이 너무나 좁았다.
"자식을 안 가지려고 질질 끌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A의 감감무소식을 내게 처음 알려준 건 그녀의 시아버지였다. 쉰을 바라보는 아들이 스물 갓 넘은 동남아 아가씨와 결혼해서 평탄하게 살아갈 줄로만 기대하셨을까. 기운 없는 목소리에 한탄과 분노가 스쳤다. “걔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렵게 모은 돈도, 귀한 손주를 안겨줄 며느리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A가 반짝이는 눈으로 신분증을 받아 들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아버지는 A의 거주불명등록 신고서를 썼다.
사랑하는 사람 간의 결합이라는 신화를 포기한 대신 철저하게 돈으로 맺은 계약이었다. ‘그 돈의 대가가 다정함, 섹스, 집안일, 시부모 부양이라는 걸 뻔히 알았으면서 어떻게 도망갈 수가 있느냐’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내 마음 안쪽에서는 이런 의문이 흘러나온다. '돈 주고 사람 마음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들이 택한 결혼의 조건에 돈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 마음까지 쉽게 구입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까. 아내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한국 남자들이 기껏해야 '배신'을 당하는 동안 먼 곳에 고향을 두고 온 수많은 아내들은 한국의 가족들로부터 '욕설과 구타와 살해'를 당해왔다는 신문 기사 속 한 줄을 읽은 후로 자꾸 마음이 한 쪽으로 기운다.
A의 남편은 지난달 이혼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왜 A가 한국 국적을 얻자마자 가족들과 연락을 끊었는지, 어째서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고 가족들의 애를 태웠는지, 이혼 판결은 어떻게 난 건지, 그녀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국에 온 사기꾼이었던 건지, 나는 전혀 모른다. 남겨진 가족도 떠나간 A도 이 결혼으로 인해 상처를 얻었으리라는 짐작은 하지만 그 너머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얼마 전 귀화 허가를 얻어 첫 신분증을 발급하러 온 행복한 표정의 B를 보며 국제결혼의 또 다른 면을 들여다볼 뿐이다.
장난감 자동차를 손에서 놓지 않는 세 살배기의 엄마인 베트남 여성 B는 세 번이나 동사무소를 찾아온 끝에 겨우 주민등록증을 신청했다. 설 연휴와 맞물려 출입국사무소와 구청의 귀화 업무 처리기간이 늘어난 탓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 그녀에게 또 한 번 방문을 부탁하는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얼굴에 사랑스러움이 가득 차오르게 한 발신인의 이름은 '귀여워'였다.
"왜 남편분을 '귀여워'로 저장해 놨어요?"
"음... 귀여워서요. 남편 귀여워요."
그날 오후 '귀여워'는 동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는 요청을 건넸다. 우리 아내가 신분증을 빨리 갖고 싶어한다고, 다른 친구들은 다 나왔는데 자기만 안 나와서 속상해한다고, 아내를 잘 부탁한다고. 윽박지르면 다 통하는 줄 아는 목소리 큰 남자들에 지쳐있던 나는 아내보다 스무 살은 더 먹은 그가 왜 '귀여워'인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B가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로 떠나와 남편에게 의지하며 보내온 지난날들이 어떤 결을 지녔는지 이 세 글자에 담겨있었다.
나보다 낮고 작은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담긴 '귀여워'라는 애칭 덕에 그 후로 그녀를 볼 때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조금 다른 피부색과 말투 때문에 바깥에서 마음이 덜그럭거리는 날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는 그녀가 편안하게 지내리라고 믿을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들의 성화 덕에 장난감 자동차가 100대 넘게 있다는 그들의 집에는 아기자기한 행복도 많이 채워져있지 않을까.
신부를 얻으려고 몇 달에 걸쳐 서류를 준비하던 한 노총각이 오늘은 의기양양하게 아내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아내가 큰 눈망울을 부라리니 금세 쩔쩔 매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싱긋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여기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녀들이 동남아에서 돈 주고 사온 가련한 신부가 아니라 새로운 나라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기로 모인 각양각색의 이름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녀들을 만날 때 안위에 대한 걱정보다는 멀리 떠나 온 용기를 먼저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B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나라의 어디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슬며시 물어봐야겠다. 귀염둥이 꼬마가 함께 온다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는 어떤 친구인지도 물어봐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