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무섭도록 빠르게 훌쩍 떠나는 나지만, 금요일 오전에 뜬금없이 베트남 호이안이라는 지역에 대해 검색해보고 그날 오후 항공권을 사서 일요일에 출국한 건 특기할만한 일이다. 임신 27주 되도록 해외에 갈 엄두를 못 내다가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가뿐하게 공항으로 나섰다.
다행히 대전에서부터 호이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택시와 ktx와 비행기와 픽업 차량 모두가 나를 환대해준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늦게서야 자리에 누워 새벽잠을 설친 끝에 현지시각 5시가 조금 넘어 엄마와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항상 7시에 아침을 먹는 습관이 시차를 넘어 발동된 모양인지 부지런히 동네를 구경할 수 있었다. 날마다 메인 요리가 달라지는 푸짐한 뷔페식 조식도 첫 번째 손님으로 입장하여 맛보았다.
왕복 17만 원짜리 비행기와 1박에 6만 원짜리 풀빌라 리조트가 선사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볼록하게 부푼 배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수영장으로 들어가 물장구치고 방 뒤편으로 이어진 야외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는데, 참 행복했다. 임신 기간 동안 항상 조금이라도 찌뿌둥한 기분이 따라다녔는데 오늘 물속에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너무나 가벼웠다. 이 기분을 기억해두면 나중에 힘들 때 잘 버텨낼 수 있으리라는 용감한 예감이 들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은 그 순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긴 삶을 견뎌내는 데 꼭 필요한 것 같다.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베트남 음식을 잘 드셨다. 외국에 나와서는 식빵 토스트나 좀 드시고 한국에서도 낯선 음식은 입에 안 대시던 분이 어쩜 이렇게 씩씩해지셨을까. 호이안식 비빔국수인 라오꺼우는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며 꽤 드셨고 녹두부침개와 비슷한 반쎄오는 내일 점심때 또 먹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남이 내 몸을 만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번만큼은 임산부용 전신 마사지를 편안하게 잘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이 될 여지가 아주 많은 '변화 속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아주 멀리 와서야 깨닫는다. 그 먼 거리가 우리를 다른 사람이 돼보게끔 흔들어주는 것 같다.
호이안 중심가의 밤 풍경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택시를 잡는 대신 그랩 어플을 처음으로 사용해보고, 엄마의 컨디션에 따라 마지막 날 일정을 급하게 조정하고, 레이트 체크아웃의 비용이 너무 비싸 대안을 짜내느라 골몰했더니 얼른 쉬는 것밖에는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달래고 나면 힘이 난다. 오늘 내 마음이 어디서 어디로 여행했는지 남기고 싶는 욕심이 피곤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에 오히려 신이 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