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내일 또 날아오르자

5월 6일

by 박유미

그래, 거기서부터 욕심이었다. 도서관을 나서는 내 어깨에 터질 듯 울룩불룩한 에코백이 매달려있을 때부터. 8권이나 짊어지고 나오다니 이걸 언제 다 읽으려고 그랬니. 새 책 서가 앞에 서는 게 오랜만이라 사재기하듯 쟁여버렸다. 아기가 울음을 터트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책등에 수 놓인 제목들을 감상하고 풀썩 주저앉아 맨 아래에 꽂힌 책들을 쑤석였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 나와 함께 여행을 다니다가 멋진 여행작가로 성장한 친구가 떠오르고, 미디어 관련 도서를 발견하면 같이 수업을 듣던 선배나 신문사 인턴 동기가 연출한 TV 프로그램들이 떠오른다. 내가 하지 못한 일, 내 능력이 부족했던 순간들이 자꾸 겹쳐지면 그 무게에 짓눌리는 건 순식간이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제야 바깥으로 걸음을 뗀 것도 그간 더해진 내 마음의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푹 퍼져서일 것이다.

중혁이는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치킨집 광고지의 닭다리를 가리키며 '굴착기'란다. (물론 "이이잉" 소리를 내며 손으로 퍼올리는 시늉을 할 뿐이다.) 나는 틀렸다고 알려주는 대신 노란색과 국자 같은 모양새로 둘을 연결시켜 집어낸 아이의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매 순간을 놀라운 발견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에게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모른다'는 평가가 얼마나 얄팍한가.

저녁 밥상 앞의 아이에게 사과를 반으로 잘라주면 하나로 합쳐서 원래 모양을 복원해낸다. 다시 사과 조각을 나눠서 휴대전화처럼 귀에 대고 "네, 네!" 외치는 이 아이에게 공연한 후회와 불필요한 무거움은 없다. 가벼워서 훨훨 날아다니다가 사뿐하게 오늘에 내려앉는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길조차도 그렇다. 아, 그 가벼움, 나 자신에게도 허락하면 안 될까.

오랜만의 나들이에 밀린 집안일까지 싹 마치고 오후 내내 아기를 챙겼더니 밤이 가까워 지쳐 떨어졌다.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라고 아기에게 화를 버럭 내고는 내 탓, 내 탓, 또 내 탓을 했다. 내가 너무 욕심부려서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자 남편에게도 오늘 나 같은 순간이 있었단다. 기운차게 지낸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이런 실수가 낯설었을 거야. 그럼 낯선 실수 또 많이 하면서 지내자. 새로 만나는 내일도 발견하고 놀라워하면서 우리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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