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혹은 둘이서, 부산

8월 22일

by 박유미

엄마 배 속에 온 지 오늘로 23주가 된 유유가 아침을 맞이한 곳은 해운대의 어느 호텔 방, 광안대교 너머의 흐릿한 구름 사이로 해넘이를 구경하는 지금은 그 호텔의 옥상 라운지이다. 하룻밤에 고작 12,000원인 4인1실 도미토리지만 이보다 호사스러운 여름밤도 드물다. 동행도 없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임산부 여행자는 나 말고 없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유유도 엄마가 얼마나 재미있게 혼자 잘 돌아다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을 따라 하루에 25km를 걷거나 인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침대형 야간열차를 타던 때처럼 호기롭게 여행할 수는 없다. 조식을 챙겨 먹 후에는 물 먹은 솜처럼 몸이 축 늘어지니 유유가 만족할 때까지 '아침 코오'를 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간다. 조심히,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서두르지만 않으면 혼자 혹은 둘이서 하는 이런 특별한 여행도 그리 어렵지 않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을 찾아가 구경하다가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를 고른 이유는 단지 '20분 후에 시작하는 영화'이기 때문이었는데, 무심한 마음으로 조금은 지루하게 스크린을 쳐다보다가 결국은 한 시간 넘게 줄줄 울고 나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아예 엉엉 울었고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찬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했으며 남편에게 후기를 들려주다가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머니가 아기였던 자신을 많이 사랑했다는 걸 주인공이 기억해내는 장면마다 나의 아들이 겹쳐 자꾸 눈물이 흘렀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줄 사랑이 그보다 먼 미래에 나의 아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나는 미래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꾸자꾸 울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주인공과 영적인 능력을 가진 보조자, 낡은 아파트의 이웃이라는 관계, 치유와 죽음이라는 모티브까지 많은 부분이 빼닮은 <파니핑크>라는 영화가 있다. 나를 무장해제시켜 펑펑 울린다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인데, 지금까지 <파니핑크>를 보며 나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울었다면 이제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보며 나의 소중한 존재를 위하여 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맑게 끓인 복어국을 든든히 먹고 열차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철길을 찾아 조용히 저녁 햇살 아래를 걸었다. 호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돌아오는 데도 금방이었다. 더 많은 걸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더 소중하고 중요한 걸 해내게 되리라는 걸 알아간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것을 더 갖는 대신 나 자신으로서 더 성장하리라는 것도. 혼자여도 혼자이지 않은, 우리의 여행이 풍요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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