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을 '지금 여행'하는 글쓰기
낯선 사람들 삼백여 명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온 지 닷새 지나서야 이 이야기의 첫 문장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여행의 기억을 글로 끄집어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가족들과 수원에 가서 아이와 남편이 눈싸움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고나서,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집에서 종일 푹 퍼져있거나 운동과 집안일을 하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앞의 문장들을 마치고 지금 이 문장을 쓰기 시작하기까지는 이틀이 더 걸렸다. 그제부터 윗배가 싸르르 아프고 기운이 떨어져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더니 어제는 구토감이 심해 결국 병원에서 장염 진단을 받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병원, 미용실, 복싱장, 청과물 가게를 차례대로 들르고 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하여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만에 드디어 그 낯선 여행에 대하여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은 1박2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관한, 더 정확히는 오늘에 관한 글이다. 기차에서 내려 서로 인사를 건네고도 혼자만의 여행이 끝나지 않아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이제서야 글 쓰는 자리로 돌아왔으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재즈 음악이 느긋한 카페에서, 종일 축 쳐져서 머문 이불 속에서, 나는 언제든지 쓸 수 있었으나 쓰지 않았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느낌을 마주한 채로 나를 보채지 않으려 애썼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운동을 다녀오고 책장을 넘기고나니 일주일 전의 사건이 지금 막 여기에 도착해 나의 이야기가 될 준비를 마쳤다. 글쓰기는 실제로 언제 어디에서 벌어졌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게 만든다. 일주일 전의 기차 여행을 지금 일어나는 사건으로서 경험한다면 내가 지금 적는 건 '오늘의 일기'이지 않을까.
무궁화나 KTX 대신 '교육열차'라는 낯선 단어가 대전역 전광판에 떠올랐다.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대전역에 거의 도착했다고 단톡방이 떠들썩했다. 막상 3번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와글와글한 채팅창과 달리 썰렁했고, 조용히 딴청 피우는 사람들만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서있었다. 지금 막 들어오는 저 기차에 탄 사람들, 그리고 여기 선 수줍은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1박2일을 보낼 동행이다. 기차를 통째로 빌려 삼백 명 넘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니,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해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패키지 단체관광이라면 이런 규모도 가능할 테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울긋불긋하게 외관을 꾸민 교육열차에 올라탔다. 스탭이 나눠주는 도시락과 일정표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만 단체관광도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야. 유부초밥을 꼭꼭 씹으며 상념에 잠겼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데 익숙해지는 동안 낯선 이와 함께 여행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혼자 떠난 이는 혼자이기 때문에 처음 만난 이와 동행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함께 기차에 올라탔지만 서로 아무도 모르는 이 여행도 사실 혼자하는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 모두와 동행이 될 수 있었다. 스탭의 안내에 따라 네 명씩 마주볼 수 있도록 좌석을 회전시켜 뒷자리에 앉아있던 두 여성과 무릎을 맞댔다. 어색한 인사와 가벼운 이야기가 오갔다. 상냥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와 무엇이 닮았는지, 어떤 면이 어긋나있는지' 관찰하고 따져보는 버릇이 발동했다. 하지만 코 앞밖에 보지 못하는 어설픈 조심성을 비웃듯 내 삶은 차근차근 이틀을 보냈고, 내 생애에서 그 이틀은 온전히 두 사람의 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경험에 귀 기울이고 발걸음을 따라가는 데 이틀을 모두 썼다.
군위, 안동, 영주, 칠곡을 돌며 정원을 걷고 강연을 듣고 공연을 보았다. 목적지마다의 소회라면 '낯설고 고맙고 피곤했다' 정도로 요약해도 좋을 것 같다. 삼백여 명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예상처럼 만만치 않았다. 한참 버스를 타고 달린 후 "40분 동안 구경하고 정각까지 버스에 탑승하라."는 공지에 쫓기기를 반복한다고 투덜댈 수만은 없었다. 혼자 여행을 할 때처럼 세심하게 장소와 연결되는 경험을 이뤄내기도 어려웠다. 다만 그 모든 경험을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것만은 내게 큰 가치가 있었다. 내게는 이 여행단이 사회와 삶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낯설고 고맙고 피곤한 타인들의 집합 속에서 살아가기. 화려한 관광명소에 들렀을 때보다 소박한 명상의 시간 후 연못 주위를 걸으며 잔잔히 이야기 나눈 때가 더 좋았던 것도 내게 일깨우는 바가 있었다. 어딘가에 가서 좋았다기보다는 그곳에 '같이' 가서 좋은 여행이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읽어봐도 이건 오늘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왜 이 글을 쓰는 데 일주일이나 걸렸는지 이제 분명하게 안다. 나는 여행의 기억을 돌이켜 기록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삼백여 명과 함께 한 1박2일을 다시 몸으로 느끼며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어내려가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그 여행을 떠나보내고 오늘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오늘의 일기를 여기에서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