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앉은 자리가 당신의 글이니

● 두 번째 하루

by 박유미


나는 별명이 없는 아이였다. 공부는 잘하는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재능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의 기쁨을 배워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지내는 넉살도 조금은 키웠나 보다. 요즘은 '윰보'에 이어 '윰작가'라는 별명이 생겼다. 들을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어떤 공간을 글감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제는 내가 즐겨 찾는 연어덮밥 식당에서 사진을 찍다가 삼삼오오 식사를 하는 꽉 찬 식당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미는 게 거북해 그만두었다. 대신 나도 열심히 밥을 먹었다, 이전에 그랬듯이. 피사체가 되길 원치 않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수집하는 것이 싫었다.


글은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쓰이기 시작한다. 내 삶을 한순간씩 잘 살아내는 것 말고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어느 늦은 저녁에는 취재를 하러 동료가 추천해준 카페에 들렀다가 메뉴판만 멍하게 쳐다보고 그대로 나왔다. 메뉴판 위의 당근케이크, 카푸치노, 딸기 스무디 같은 활자들 사이로 엄마가 아침에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빵 같이 허술한 거 먹지 말고 꼭 밥을 사 먹어. 예쁜 케이크 조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몰려왔다. 뒤돌아 보니 카페 이름이 '나의 열두 달'이었다. 사계절을 함께 지내도 하루가 처음이듯 나도 갓 지어먹는 밥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소개하는 곳들이 정말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거기에 '내가' 있었기에 좋은 곳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건, 곧 내 글을 읽는 '그가' 언젠가 있었던 공간도 그 어떤 장소만큼이나 소중하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글이 어느 특정한 위치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지금 앉은 자리를 가리키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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