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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세한도(歲寒圖)

스승이 제자에게 그려준 정표

2020년 8월 19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 세한도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이 세한도가 제주에서 서울로 동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무려 열 번째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에 기증되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곧 국민의 품이다. 박물관에 오기 전에 무려 10명의 소장가를 거쳤다. 우선 이상적(추사의 제자)-김병선(우선의 제자)-김준학(김병선의 아들)-민병휘(휘문의숙 설립자)-민규식(민병휘의 아들)-후지스카 지카시(경성제대 교수)-손재형(국회의원)-이근태(개성 출신 사설금융업자)-손세기(개성 출신 갑부)-손창근(손세기의 아들).  무슨 자석이 달린 것처럼 진짜 주인의 품에 전해졌다. 세한도의 운명이다. 지하의 추사도 기뻐할 것이다. 2차 대전 중 손재형이 후지스카에게서 세한도를 돌려받은 일화는 듣기만 해도 가슴 뭉클하다. 재능은 하늘에 내리지만 그 감동은 땅의 인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왜, 권력가와 재력가들은 세한도를 소유하려고 한 것일까? 국보(180호) 이전에 세한도에 얽힌 가슴 뭉클한 스토리에 감명을 받아서일 것이다. 갈필 묵으로 그린 세한도를 보면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풍긴다. 허름한 집 주위에 솟아 있는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으로 마주 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세한도의 예술적 가치를 국보급으로 만든 것은 추사가 그림에 부여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추사 특유의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를 느끼게 하는 발문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지난해에 <만학(晩學)>과 <대운(大雲)> 두 책을 보내주고 올해에는 우경(藕畊)의  <문편(文編)> 보내오니, 이러한 일은 모두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천만 리 머나먼 곳에서 구입해 오고,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서 얻은 것으로 일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세상은 도도히 흐르는 물결처럼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좇아 따라가서 마음을 기울이고 공적을 쏟아붓는 것이 상례인데, 권세와 이익에 붙지 않고 바다밖에 있는 초췌하고 메마른 나 같은 사람에게 돌아왔도다. (중략) 공자가 말하기를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 내내 시들지 않는 것이니, 날이 차가워지기 이전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도 한결같이 소나무와 잣나무이다. 그러나 특별히 성인은 날이 차가워진 다음을 칭찬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이 이전이라고 해서 더한 것이 없고 이후라고 해서 덜한 것이 없다. (후략) <한정주(2015). 호, 조선 선비의 자존감. p.578>


세상의 인심도 사람의 마음도 다 변하기 마련이다. 계절이 바뀌면 산천의 색깔이 바뀌는 자연의 이치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해주는 제자를 본 스승의 마음은 울컥했을 것이다. 성인의 조건이 따로 있겠는가? 권력과 이해관계를 좇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 않는 사람, 상대가 곤궁에 처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변함없이 대하는 사람이 바로 성인이고 군자라고 할 것이다. 


 세한의 원문은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이다. '혹한이 물러간 후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원래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지만, 추사는 자신의 처지를 혹한에 비유했다. 혹한은 제주 유배 생활을 하는 곤궁한 처지를 말한다. 당시 제주는 척박한 지역이었고 가는 것도 뭍으로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완도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운이 없어 급랑을 만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었다. 금수저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라 권세를 누리면서 재능을 떨쳤던 추사에게 제주 생활은 그야말로 한겨울의 동장군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송백은 변함없이 푸른 자태를 유지하는 인간의 의리, 곧은 지조, 절개를 뜻하는데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비유한 것이다. 


추사는 국내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세를 탄 천재형의 인물이다. 요즘식 표현으로 글로벌 슈퍼스타다. 추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면서 손재형에게 무상으로 세한도를 넘겨주었던 후지스카는 추사를 청조학의 일인자로 꼽을 정도였다. 추사는 아무나 가까이하지 않은 까탈스러운 성정의 소유자였지만 문하에 많은 제자들을 받아 훈련시켰다. 그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잠재성이 있으면 받아 들었다. 특히 추사의 제자 중에는 중인 계급이 많았는데 세한도의 주인공 이상적도 통역관 출신의 중인이었다. 심지어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와는 동갑내기로 평생 석교(石交)의 우정을 쌓았다. 많은 제자들 중에 왜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주었을까?  


이상적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통역관이었는데 무려 12회에 걸쳐 청나라 사신단의 일행으로 왕래할 정도였다. 국가에서 청에 사신단을 파견할 때는 통역으로 의례 이상적을 찾았던 것 같다. 이런 경력 때문에 이상적은 청의 문인이나 학자들과 교류가 활발했고 이를 토대로 스승이 필요로 하는 희귀 도서들을 구해 제주에 보내주었다. 그가 추사에게 전해주었다는 책들은 당시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값도 기와집 몇 채 값이었다. 아무리 제자가 스승이 부탁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승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귀한 책을 비싸게 구입하여 유배 신세가 된 자신에게 보낸 것에 얼마나 가슴 뭉클하였겠는가? 세한도에는 그런 스승이 제자의 지극정성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표하는 답례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것도 주저리주저리 많은 내용을 담는 것보다 솔직 담백하게 고도의 절제된 마음을 실어서 말이다.  


 세한도가 국보로서 가치를 부여받게 되고 수장가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은, 신분과 직업을 뛰어넘어 스승과 제자가 나눈 송백의 푸르른 지조와 변치 않은 의리가 아닐까 싶다. 고금의 동서를 따져보아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고귀한 인간애의 실천이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세한의 정신이다. 이 세상은 세한도를 선물로 받을 또 다른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세한도에 담긴 예술성과 그 정신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기증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추사 김정희>

             <우선 이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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