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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소학동자(小學童子) 김굉필

동양의 도덕률, 소학

소학은 아동용 유학 경전 교재다. 남송 시대 주희(朱熹 1130~1200)와 유청지(劉淸之 1134~1190)가 소학을 편집하고 주석을 달았다. 어렸을 적부터 유학 경전을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초심자들을 위한 입문서이다. 대개 8세 정도의 아이들이 꼭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내용을 기존 경전에서 발췌하고 이를 쉽게 해석하여 소개하고 있다. 주요 참고 문헌은 의례, 예기, 춘추, 논어, 맹자 등 다양한 경전이다. 주희는 발간사에서 소학 편찬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반드시 어릴 적에 배우고 익히도록 한 것은 배움은 지혜와 함께 자라고, 교화는 마음과 함께 이뤄지게 해서 그 배운 것과 실천이 서로 어그러져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근심을 없게 하고자 해서이다." 


소학 하면 떠올리게 되는 유학자가 있다. 김굉필(1454~1504). 그는 김종직(1431~1492)의 제자이자 조광조(1482~1519)의 스승이다. 성리학의 정통 계보를 이으면서도 선비정신의 본보기를 보여 준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명이다. 동방오현은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다. 김굉필은 대학자이었지만 평생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황은 김굉필을 ‘근세 도학(道學, 성리학)의 조종(祖宗)’이라 추앙했다. 그는 '30세 이전까지는 모든 학문의 사작을 소학에 두어야 한다'라는 스승 김종직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다. 스스로 소학동자로 일컬으면서 소학을 실천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30세가 된 뒤에야 비로소 소학 외의 다른 글을 읽었다. 이런 제자가 있으면 스승은 언행에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대단한 제자다. 


동갑내기 남효온(1454~1492)은 김굉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뛰어난 행실은 비할 데가 없었으니, 평상시에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였고...  항상 소학을 읽어서 밤이 깊은 뒤라야 잠자리에 들었고 닭이 울면 일어났다. 사람들이 국가의 일을 물으면, 언제나 “소학이나 읽는 동자가 어찌 큰 의리를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일찍이 시를 지어, “공부해도 오히려 천리 알지 못했는데, 소학 읽고 나서야 지난 잘못 깨달았네.”라고 하자, 스승 김종직이 “이것이 곧 성인 될 수 있는 바탕이다. 요즘 세상에 이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나이 삼십이 된 뒤에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었다...."


 옛 성현들은 한결같이 소학을 필독서로 추천했다. 먼저 사람됨의 바탕이 형성된 다음에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자는 '소학은 집터를 닦고 재목을 준비하는 것이며 대학은 그 터에 재목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라고 비유했다. 소학 원전을 옮긴 윤호창(2019)은 소학을 '완전한 인간됨을 위한 동양의 도덕률'이라고 표현한다.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소학의 구성은 유학의 원리를 충실히 담은 총 6편으로 구성된다. 교육의 길, 인간의 길, 수양의 길, 고대의 도, 아름다운 말, 착한 행동. 


소학의 내용은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실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내용들로 가득 찼다.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사고 체계와 관점의 간극이 매우 크다. 오늘날 소학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라테보다 훨씬 이전의 라테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볼 게 뻔하다. 주희가 소학을 편찬한 시대에도 그런 걱정이 있었다. 그는 편찬사에서 '소학을 읽는 사람들은 옛날과 지금은 시대적 기준이 다르다고 해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은 당연히 처음부터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인간이 따라야 할  행동 기준 또는 규범에는 과거와 현대라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변치 않은 진리라는 것이 있다. 소학을 통해 옛사람들이 완전한 인간의 완성을 위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가르쳤는가를 알 수 있다. 



남효온.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중 추강집(秋江集). 서정문 옮김.

주희, 유청지(1187). 小學. 윤호창 역(2019). 소학. 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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