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fired!(넌 해고야!). 2016년 11월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다. 기자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냐? 는 질문에 "You're fired!'라는 말을 하고 싶단다. 이 말은 미국 전역에 트럼프라는 인물을 알린 취업 면접 리얼리티 쇼 'Apprentice(견습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쓰던 말이다. 이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에서 패배한 팀은 트럼프의 회의실로 불려 가 패배의 원인에 대해 토론한다. 결론적으로 트럼프는 패배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참가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말을 내뱉었다.
4년이 지난 2020년 11월 3일 치러진 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펜실베이니아는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결정타(선거인단 20명)를 날렸다. 펜실베이니아는 죠셉 바이든의 당선을 축하하는 파랑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다. 미국 수도가 필라델피아로 옮긴 듯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깃발을 흔들고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You're fired!" 실소를 금치 못했다.
말은 돌고 돌아 자신에 돌아온다. 말은 오묘하고 자석과 같다. 말이 현실과 공명(共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공자에게 묻는다. "선생님, 백성을 한데 모이게 하려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합니까? 어떤 기술이 필요합니까?" 공자의 답이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게 마련이다."(이기주, 『말의 품격』, 2018)
트럼프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승부가 놨는데도 승복이 없다.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온갖 권력을 동원하고 있다. 대선이 끝나면 현직 대통령은 당선인을 백악관에 초청하여 축하를 전한다. 승자와 패자가 한데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분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그런 문화를 확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소송으로 또 한 번의 대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최종 전투지는 연방대법원이 될 것이다. 트럼프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트럼프에게 패자의 승복 문화는 안중에 없다.
지난 4년 미국, 아니 전 세계는 그의 거친 말과 인종차별적인 레토릭에 진저리를 쳤다. 무던히도 품격도 없고 말 같지도 않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마치 백악관이 트럼프가 진행하는 리얼리티 쇼처럼 보였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의 말은 그 파워와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는 바이러스에 가까운 말을 퍼뜨렸다. 그가 퍼뜨린 바이러스는 미국 내뿐 아니라 국외적으로 일본, 필리핀, 터키, 헝거리, 러시아, 중동, 브라질 등의 지도자들에게 전염되었다. 그의 브로맨스들과 스트롱맨들... 바이러스의 숙주는 트럼피즘(Tumpism)이다.
트럼피즘? “자극적인 언행으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포퓰리즘 선동” 또는 “트럼프의 극단적 주장에 대중이 열광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트럼프(Trump)와 ‘-ism’의 합성어가 아니라 트럼프와 포퓰리즘(populism)의 합성어라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트럼피즘은 또 다른 코로나 역병이고 이단이다. 트럼프는 트럼피즘교의 교주다. 이번 대선에도 7천만에 가까운 표를 얻었다. 트럼피즘은 미국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재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퍼뜨린 바이러스가 미국 사회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주목하는 이유다. 당선인 바이든의 도전과 과제이기도 하다. 바이든의 성공을 기원한다.
경북 예천군에 언총(言塚)이라는 '말 무덤'이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言)을 파묻는 고분이다. 마을이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이기주, 『언어의 온도』, 2019). 트럼프는 말무덤에 묻어야 하는 말들을 미국과 세계의 민주주의와 선량한 사람들의 가슴에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