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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10. 2020

인권 쟁취 역사 ①

미국 시민 투표권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출하는 국가로서 자유 민주주의 교과서처럼 생각되지만 역사를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투표권(right to vote)만 해도 그렇다. 남북전쟁(1861-1865)이란 내전(Civil War)을 치른 1870년 연방헌법 수정 제15조 투표권(Right to Vote)을 비준했다. "미국 시민의 투표권은 인종, 피부색 또는 이전 예속 상태(노예)를 이유로, 미국 또는 어떤 주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아니한다." 단서도 두었다. "의회는 적절한 입법을 통하여 본조를 강제할 권한을 가진다." 합중국의 선언적 법률에 불과하다는 것은 곧 드러났다.


연방헌법의 수정을 위해서는 각 주에서도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수정안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각 주 중 4분의 3의 주가 비준을 마쳐야 한다. 1869년 2월 발의된 연방헌법 수정 제15조는 1870년 연방의회가 비준했다. 나머지 주들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리건주(1959년), 캘리포니아주(1962년), 메릴랜드주(1973년), 켄터키(1976년), 테네시주(1997년). 최대 128년이 걸렸다. 연방헌법을 고의로 쉽게 바꿀 수 없게 했다. 연방의회는 7천여 개의 헌법수정안을 심의했으나, 33개 수정안을 통과시켜 각 주에 회부했다. 그중 27개 수정안만이 비준되었다.  


연방 헌법에 미국 시민의 투표권을 보장하였음에도 남부의 많은 주에서는 흑인들의 투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합중국의 행동 규범이 되는 헌법도 무용지물이었다.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는 문해 능력 테스트(literacy test)를 통과하거나 인두세(또는 투표세 poll tax)를 내야 했다. 흑인들은 문맹자들이 많아 투표할 수가 없었다. 선거가 있을 때면 유권자 등록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들이 많은 이유다. 당시 투표 세는 1달러 정도였는데, 오늘날 환산하면 20달러 정도다. 가난한 사람들이 돈까지 내면서 투표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느 주에서는 투표소를 찾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주에서는 '할아버지 조항(grandfather clause)'을 명기하였다. 할아버지 조항은 1867년까지 투표권을 얻고 있던 사람과 그 자손에 대해서는 시험이나 투표제를 면제함으로써 백인 투표율을 유지하려 했다. 상황에 편리하게 적용되는 고무줄 헌법이었다. 이 조항은 1915년에야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인두세는  1964년 연방헌법 수정 제24조에 의해 폐지되었고, 1966년에는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존슨 대통령은 연방의회에서 제정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으로 대응하였다. 1965년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반전운동, 페미니스트, 민권운동 등 이데올로기적으로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시위와 소요가 끊이지 않았고 사회는 불안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한 존슨은 행운아였다. 케네디의 암살은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180도 바꿔놨다. 민주주의 제단에 케네디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행정부와 연방의회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존슨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건설에 필요한 법률들을 제정하였다. 민권법(The Civil Rights)을 비롯하여 복지, 교육, 보건, 국방, 과학, 국가 인프라 등 오늘날 미국이 문명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법률을 제정하였다. 죽은 케네디가 존슨과 미국 사회를 살렸다. 오늘날 J.F.K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는 대통령 임기 중에 죽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미국의 이상과 가치는 죽지 않고 살아 숨 쉬고 있다.


2019년 기준 전체 미국 인구(3억 2823만 명) 중 백인 60.1%, 히스패닉 18.5%, 흑인 13.4%, 아시안 5.9% 등 순이었다. 백인은 전체 인구의 70% 정도다. 16세 이하 세대에서 백인이 ‘소수 인종’이 됐다. 아시아와 히스패닉(중남미 이민자) 인구가 급증하는 반면 백인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인구 다양성이 심화되고 있다.  


2020년 11월 3일 실시된 대선에서 보여준 유권자의 투표 성향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농촌, 저학력 백인, 고령자 대다수는 공화당의 트럼프를 찍었다. 도심, 고학력 백인, 젊은이 대다수는 바이든에게 투표했다. 트럼프의 백인우월 또는 인종차별적인 언행이 통하는 이유다. 인구센서스를 보면 백인우월주의들이 조바심을 낼만도 하다. 건국 이래 누려왔던 기득권을 빼앗길 것 같은 심정일 것이다. 트럼프가 그들의 기득권을 되찾아 줄 것처럼 보였다. 트럼프는 정치 신인이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내는데 천재다. 워싱턴에서 정치인으로 노회한 사람들이 트럼프의 적수가 되지 않은 이유다. 


투표는 민주주의 꽃이다. 유권자는 투표로 정부를 세우고, 심판하고, 메시지를 전한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투표권 때문이다. 일부 국가에서 투표 기권자에게 벌금을 물게 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민주 국가 시민들의 투표할 권리는 기본권의 출발이다. 미국도 오랫동안 시민의 기본권을 유린, 탄압, 박해해 온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미국 시민들이 투표할 권리를 획득한 역사는 소중한 인권 쟁취의 역사다. 모든 투표가 개표(Count Every Vote)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12년 루이지애나주의 인두세 영수증(공립학교 지원 명목으로 1달러의 인두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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