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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16. 2020

자유의 여신상

비하인드 스토리

뉴욕은 항구도시다. 매년 3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뉴욕을 찾는다. 관광객이 꼭 보고 싶은 명소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다. 거대한 규모의 석상이다. 받침대에서 횃불까지 전제 길이가 93.5m(여신상 전신의 길이 46m, 받침대의 높이 47.5m). 여신상의 오른팔은 횃불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1776년 7월 4일'이 새겨진 명판을 들고 있다. 머리에는 일곱 개의 뾰족한 가시가 달린 월계관이 씌어져 있다. 자유의 이념이 전 세계 육지와 바다에 전파되기를 소망한다.


여신상은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준 선물이다. 어떻게 기획, 제작되었는지 알아보자. 여신상의 구상은 1865년 프랑스 역사가, 정치가, 시인, 작가였던 라부라이에(Edouard de Laboulaye 1811~1883)가 주도했다. 그는 열렬한 노예해방론자였고 미국의 노예해방에 환호했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은 혈맹이었다.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를 때 프랑스는 미국을 지원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영국은 앙숙 간이었다. 라부라이에는 독립 전쟁에서 형성된 두 나라의 우정과 친선을 기리고 '자유'를 찾은 미국의 독립 1세기를 기념하는 동상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 당시 프랑스는 프랑스 3세의 독재 치하에 놓여 있어 자유에 대한 열망이 컸다.  


라부라이에는 동상을 만들 조각가로 친구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솔디(Frédéric Auguste Bartholdi 1834~1904)를 선정하였다. 바르솔디는 1871년 미국을 직접 방문하여 동상 건축과 관련하여 미국 관계자와 협의하고 동상이 들어설 부지를 물색하였다. 역할 분담을 하였다. 동상은 프랑스에서 제작하고, 받침대는 미국에서 건축하기로 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바르솔디는 본격적으로 동상 제작에 착수했다. 동상의 모델과 관련하여 여러 설이 있다. 여신상의 얼굴은 바르솔디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착상했다고 한다. 바르솔디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상 제작에 몰두하여 마침내 1884년 7월 동상을 완성시켰다. 파리 시내 건물 높이 15층에 해당하는 거대한 동상이었다. 


1885년 6월 동상은 350조각으로 분해되고 214개의 나무 상자에 담겨 프랑스 군함에 의해 뉴욕항으로 운반되었다. 미국에서 받침대 조성을 위한 기금 모금은 지지부진했다. 프랑스에서 온 동상은 리버티 섬에 방치된 채 1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때 언론인 퓰리처(Joseph Pulitzer)가 적극적으로 기금 조성에 나섰다. 퓰리처는 동상이 세워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자칫 동상이 프랑스로 되돌려질 뻔했다. 미국은 동상 건립에 미온적이었다. 


프랑스가 미국에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한 가장 큰 이유는 꽤 계몽적이다. 라부라이에가 동상 건축을 위한 모금 행사에서 한 말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우리에게 진리와 정의, 계몽과 법을 통해서만이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진정한 자유다." 자유를 향한 프랑스인의 열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가. 여신상은 대서양 건너편 유럽 국가, 특히 프랑스를 정면으로 향하도록 설치되었다. 


1903년 슈일러(Georgina Schuyler)는 여신상 좌대에 새겨 넣을 글귀 선정을 요청받았다. 슈일러는 미국의 여류 시인 라자러스(Emma Lazarus)의 14행시 "새로운 거인(The New Colossus)"에서 마지막 5행을 새겨 넣었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

혼잡한 해안에 지쳐 쓰러진 가엾은 족속들을,

머물 곳 없이 폭풍우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나는 황금빛 문 옆에 서서 횃불을 높이 들리라!


미국은 이민국가다. 전 세계에서 이주한 이민들이 만든 모자이크 국가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올 때 볼 수밖에 없는 자유의 여신상에는 프랑스인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미국의 독립 이념과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전 유럽에 전파되기를 바랐다. 


인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쟁점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인가에 있다. 자유의 가치에 무게 중심을 두면 보수요, 평등의 가치에 무게 중심을 두면 진보다. 자유의 여신상은 현대 국가와 시민에게 많은 함의를 제공한다. 오른손의 횃불은 왼손에 새겨진 미국 독립선언문의 의미를 널리 전파하려는 것이다. 독립선언문의 핵심어는 자유, 평등, 생명, 행복의 가치다. 이제 자유와 평등의 테제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인류의 생명권, 행복권으로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아래는 미국 독립선언문의 앞부분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P.S.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 영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독립 선언을 했다. 이후 약 7년 간에 걸친 싸움 끝에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거쳐 독립을 인정받았다. 정확한 표기는 독립기념일이 아니라 독립선언일이 맞을 듯싶다.


손영호(2003).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살림.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_%EB%8F%85%EB%A6%BD%EC%84%A0%EC%96%B8#%EC%A0%9C1%EC%9E%A5

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C%9C%A0%EC%9D%98_%EC%97%AC%EC%8B%A0%EC%8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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