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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28. 2020

1492년의 스페인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 왕은 유대인을 발견하다.

유럽에서 15~17세기 중반은 스페인의 시대였다. 특히 1492년, 스페인에는 국운을 좌우할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는 역사는 레콘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 운동)이다. 재정복 운동은 1492년 1월 2일,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종결되었다. 781년(711-1492)만이었다. 레콘키스타의 완성으로 국토를 회복한 스페인은 로마 가톨릭의 보호국을 자처하며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1492년은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연합하여 스페인 왕국을 수립한 해이기도 하다. 무슬림의 지배에서 벗어나 정치적, 문화적 이해를 달리하는 지역 군주들이 하나의 통치구조에 합의했다. 합의에 이르게 된 합일점은 바로 로마 가톨릭이라는 종교였다. 그해 3월 31일 '알람브라 칙령'을 공포했다. 스페인판 '퐁텐블로 칙령(1685년 프랑스에서 프로테스탄트를 추방한 칙령)'이다. 칙령의 골자는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이었다. 4개월의 시간을 주었다. 칙령은 유대인들의 죄를 명시했다. "신성한 가톨릭 교리를 무너뜨리고 신앙 깊은 교도들을 무너뜨리려 시도했다." 칙령은 유대인의 재산에 대해 이렇게 명시했다. "유대인의 모든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반출할 권리를 부여한다. 하지만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가져갈 수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유대인 이주민 숫자는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오스만 제국과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 멀리는 신대륙 남미까지 세계 전역으로 흩어졌다. 집단 디아스포라의 시조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세파르디(Sefardí)' 유대인은 약 3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파르디 유대인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고 자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스페인 거주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히브리어로 ‘세파라드’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 스페인이 유대인을 쫓아낸 후 금융과 유통망이 무너졌고 1557년 국가부도를 선언하였다. 프랑스가 위그노를 추방하면서 빚어진 결과를 확인한 바 있다. 국가의 경쟁력에는 문화적 다양성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알 수 있다.


2019년 9월, 15세기 말 스페인에서 추방됐던 '세파라드' 유대인의 후손들이 스페인 국적을 얻으려는 신청에 봇물이 터졌다. 13만여 명의 유대인 후손들이 국적 취득 신청을 했다. 신청자는 가계 족보 또는 랍비(유대 율법학자)의 공증을 통해 유대인 혈통을 증명해야 한다. 스페인어와 역사·문화 지식에 대한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소정의 과정을 통과한 신청자들은 기존 국적과 상관없이 스페인 시민권을 얻게 된다. 스페인 하원은 2015년 3월 25일, 중세 시기 ‘유대인 추방’을 속죄하고 그 후손들에게 스페인 국적을 부여해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구 상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유독 유대인은 핍박과 박해를 많이 받았다. 혹자는 예수를 죽게 했다는 죄 때문에 미워한다고 한다. 혹자는 상술에 뛰어나 부를 축적하고 고리대금을 한 것이 밉다고 한다. 레콘키스타 후 스페인에서 벌어진 유대인 추방과 처형은 2차 세계대전의 나치 만행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종교를 이유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끔찍한 마녀 사냥을 했다. 


1492년 8월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4차례(1차: 1492. 8-1493. 3, 2차: 1493. 9-1496. 6, 3차: 1498. 6-8, 4차: 1502.5-6)에 걸쳐 항해를 했다. 오늘날 콜럼버스가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과 박해로 비난을 받고 있지만, 대단한 탐험가이다. 그는 신대륙에 거주는 원주민을 신앙 포교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자신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도 생각했다. 한 번도 항해를 마치기 어려운 환경에서 네 번씩이나 항해를 다녀온 것은, 그만큼 그의 메시아적 열정과 포부가 높았다.


1492년,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이 세계 경영을 위한 기지개를 켠 해이다. 유럽 역사를 보면 세계 경영을 위한 공통 조건을 발견한다. 국가는 지리적, 종교적으로 통일되어야 하고 자본과 해양 기술을 구비해야 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쫓아내고 국토 재정복 운동은 물론 가톨릭 국가로서 위상을 수립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은 본격적으로 해양에서 경쟁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스페인의 레콘키스타가 있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발견 기념비>


주경철(2017). 그해, 역사가 바뀌다. 21세기 북스.

https://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22010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117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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