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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28. 2020

아일랜드 대기근

가진 자의 탐욕과 비인간성

어느 지역에서든 이상 기후, 전쟁, 전염병, 부조리, 흉작 등 다양한 요인으로 기근(飢饉)이 생길 수 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기근이 발생하면 창고를 열어 비축 식량을 풀고 구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일랜드 대기근(1845~1852 Great Famine)은 특별히 비정상적이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고 있었다. 기근이 들어 수많은 백성들이 기아와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는데 지배하는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수탈과 착취는 더 가혹했다. 영국은 식민지 백성들의 존엄성을 처참하게 짓밟고 구호를 하지 않았다.


아일랜드는 토지가 비옥하다. 국토의 3분 2 이상이 녹초지이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녹색과 맞아 떨어진다. 대기근 당시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했지만 밀, 옥수수 등의 곡물도 재배하였다. 물론 이 곡물은 대부분 영국으로 실어 갔다. 뿐만 아니라 본토 영국은 우유, 버터, 소고기, 밀가루, 사과 등 많은 먹거리를 수탈해갔다. 전형적인 식민 국가의 악랄한 착취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호남 곡창지대에서 난 쌀, 소금, 면화 등을 군산항과 목포항을 통해 수탈, 착취해간 것과 데자뷔 된다. 


아일랜드인들은 대기근으로 백만 명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십만 명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 대부분은 신대륙 미국으로 갔다. J. F. 케네디 대통령 역시 아일랜드 혈통으로 대기근 시절에 미국으로 온 이민자의 후손이다.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1960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인크레더블 했다. 미국 사회에서 WASP(백인, 앵글로 섹슨, 개신교)가 아니면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2020년 11월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J. 바이든 당선인의 선조 역시 대기근을 피해 미국 이민 대열에 가세했다. 


대기근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한 가지는 아일랜드인들 대부분은 감자를 주식으로 했는데 감자 잎 마른 병이 퍼져 흉년이 거듭되어 기근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은 감자병이 원인이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영국이 아이랜드에서 수확되는 곡물을 남겨놓지 않고 가져가는 바람에 먹을 것이 없었다. 감자를 대체할 식량도 없었다.  


기근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근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굶주림과 기아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아일랜드는 인구 25%가 감소하였지만, 대영 제국은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웃이 굶주리면 서로 보살피고 식량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한 국가가 통째로 기아에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몰인정하고 비인도적이었다. 오히려 아일랜드인들의 기근을 이용하여 본토인들은 탐욕을 부렸고 저주를 퍼부었다. 


영국 성공회 종교지도자를 비롯한 많은 본토인들은 기근의 원인을 "신의 뜻을 거스른 아일랜드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석했다. '신의 뜻을 거슬렀다'는 것은 영국 성공회로 개종하지 않고 가톨릭을 믿는다는 조롱이다. 자기와 다른 종교적 신념은 용납하지 못했다. 


아일랜드인들은 구호 식량을 기다리지 못해 밸파스트 빈민 구호 시설로 모여들었다. 구호 시설에 오는 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아일랜드의 시인 이반 볼랜드(1944~2020)는 민족의 아픔을 시로 표현했다. 빈민 구호소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식량을 구하지 못한 가족의 사연을 그리고 있다. 가슴 시린 시의 한 구절이다.  


'격리(quarantine)'


한 민족 전체의 가장 힘든 해에 

가장 힘든 계절의 가장 힘든 시간에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빈민 구호소를 떠났다.

그는 걸어서, 둘 다 걸어서, 북쪽을 향했다.


그녀는 너무 오래 굶어 열이 났고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들어 등에 업었다.

그렇게 서쪽으로, 서쪽으로, 그리고 북쪽으로 걸었다.

밤이 내리고 얼어붙은 별 아래 도착할 때까지.


아침에 그들 둘 다 죽은 채 발견되었다.

추위 속에서, 굶주림 속에서, 역사의 부조리 속에서.

그러나 그녀의 두 발은 그의 가슴뼈에 대어져 있었다.

그의 살의 마지막 온기가

그녀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어떤 낭만적인 연애시도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여유로움에서 풍겨 나는 우아함과 육체적 관능에 대한

어설픈 찬미를 위한 자리는 여기에 없다.

단지 이 무자비한 목록을 위한 시간만이 있을 뿐.


1847년 겨울 두 사람의 죽음

또한 그들이 겪은 고통, 그들이 살았던 방식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있는 것

암흑 속에서 가장 잘 증명될 수 있는 것 _류시화 옮김  

                  


아일랜드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아일랜드는 1169년 잉글랜드 헨리 2세가 점령한 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이 성립되기까지 750년 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801년에는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과 아일랜드의 두 의회가 통합하고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탄생했다. 한번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종교, 민족성,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북부 아일랜드만 오늘날의 그레이트 브리튼에 남았다. 1928년 이후 영국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 변경된 이유다. 

역사는 싸우고 죽이고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서로 화해한다. 역사의 아이로니다. 아일랜드는 한(恨)을 품고만 있지 않았다. 그 한(恨)을 국가 재건의 에너지로 상승시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더 이상 슬픈 아일랜드가 아니라 당당하고 부러워하는 아일랜드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떠올랐다. 


1997년 6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를 찾아 19세기 영국인의 착취로 아일랜드인 200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에 대해 사과했다. 2011년 5월 영국 국왕으로 100년 만에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도 과거 영국의 가혹한 통치에 대해 사과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양국이 역사적으로 큰 심적 고통과 격동, 손실을 경험해온 것에 대해 슬프고 유감스럽다. 험난했던 과거로 인해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염려와 깊은 연민을 보낸다.” 총리도 여왕도 용기 있다. 1998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립 등을 골자로 한 '성(聖) 금요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가해자의 사과가 먼저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는 화해이다. 가해자의 사과와 당사자 간의 화해는 역사를 앞으로 밀어내는 순풍이다. 


2014년 4월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영국을 처음 국빈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녹색 에메랄드가 박힌 왕관과 목걸이를 착용했다. 녹색은 아일랜드 국가의 상징색이다. 1970년대 영국에 맞서 북아일랜드 독립 무장투쟁을 벌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사령관을 지낸 마틴 맥기네스 북아일랜드 제1부 장관도 참석했다. IRA 테러로 사촌을 잃은 여왕은 그 앞에서 화해의 건배를 제의했다. 포용과 통합의 지도력이다. 


한국인을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으로 묘사하는 사람도 있다. 박지향 교수는 '슬픈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인과 한국인의 공통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며 뛰어나다고 믿는 맹목적 애국심, 자신들의 역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그리고 실제로 강대국 곁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 등 두 나라 간에는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에 대한 민족 감정이 호의적이지 않다. 본토 영국인들의 저주처럼 '신의 심판을 받으면서 굶주려 죽어갔던 아일랜드인'은 가슴에 영국인들에 대한 분노와 원한을 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민족 감정과 비슷하다. 아일랜드인들도 영국으로부터 수백 년 간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온갖 수탈과 착취를 당했으니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남는 것은 한(恨)과 적개 감이다. 동병상련의 한민족은 잘 안다. 


대기근(Great Famine)의 피해자 아일랜드가 가해자 영국과 대화해(Great Reconciliation)의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과 가깝지만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관계 개선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여러 면에서 먼 나라다. 시간이 갈수록 아주 먼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를 통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기회와 가능성을 본다. 역사는 가진 자의 탐욕과 비인간성으로는 인류 공동체를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인류애, 겸손, 사과, 실천하는 용기, 상호교류만이 인류 진보를 위한 처방전이다.  


류시화(2019). 시로 납치하다: 인생학교에서 시 읽기 1. 더숲.

박지향(2019). 슬픈 아일랜드. 기파랑.

영화 'Far and Away'(1997). 톰크루즈, 니콜 키드먼 주연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40979

https://news.joins.com/article/14408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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