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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Feb 06. 2021

외교란 무엇인가?

영일동맹의 불편한 데자뷰

외교란 무엇인가?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국가의 공적인 통치 행위다. 외교는 국가의 통치이념과 국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고도의 통치술이며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다. 냉전시대의 외교가 이데올로기를 준거로 적과 동지로 구분하였다면, 오늘날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익을 함께 하는 세력들 간에 합종연횡을 하는 '가치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서 가치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자유 보호, 보편적 권리 옹호, 법치 존중 등이다. 


최근 영국과 일본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은 1902년 동맹관계(Anglo-Japanese Alliance)를 구축한 적이 있다. 해양강국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던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두 나라는 두 가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섬나라라는 것과 제국주의 탐욕으로 무장한 국가.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유럽의 과학 기술을 수입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일본은 아편전쟁 이전 부터 중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다. 중화를 자처하는 중국이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막부에서 천황 체제로 내정을 정비한 후 구미 각국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했다. 영국에서는 선박 제조와 운영 기술과 같은 조선해양기술을, 독일로부터는 군사기술과 법률 시스템을, 네덜란드에서는 의학을 배웠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당시 일본의 승리를 예측한 국가는 많지 않았다. 승리의 요인에는 영국과 같은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국은 일본이 러일전쟁에 필요한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를 구입하고 일본 해군의 전력 향상을 위한 기술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주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한반도를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화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의 승인하에 이루어졌다. 일본은 한반도를 강제 합병하기 위해 대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선제적으로 외풍을 차단했다. 미국과 비밀리에 카쓰라-테프트 조약도 체결하였다. 조선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바랐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한반도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일본에 실질적인 재정 및 군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병탄을 지원했다.


러일전쟁 개전 초기 프랑스 신문 ‘르 프티 파리지앵’에 실린 만평. 왜소한 일본인과 덩치가 3배쯤 되는 러시아인이 링에서 붙고 있다. 링 바닥엔 동북아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러시아인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 일본 선수는 한반도 남부를 밟고 있다. 관중석 앞줄에는 덩치가 큰 영국인이, 다음 줄엔 프랑스와 독일인이 앉아 있다. 그다음 줄에 미국인이 서 있다. 중국인은 경기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장막 뒤에서 훔쳐보고 있다.(조선일보. [선우정 칼럼] 외교로 망했던 나라의 외교 행태. 2021년 2월 24일자 재인용.) 


제국주의의 선두주자였던 일본과 영국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사이가 틀어졌다.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일본은 유럽 전선에 참전하는 것보다는 군수용품을 제공하고 아시아에서 전리품을 챙기는 역할에 충실했다. 전쟁 특수를 한껏 누렸다. 3차에 걸쳐 갱신하던 영일동맹은 1923년 공식 폐기되었다. 러시아가 소련으로 바뀌면서 만주와 한반도로 남하할 가능성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충돌할 경우에 영국이 일본 편을 들기가 어려운 측면도 작용했다. 


최근 영국과 일본이 다시 손을 잡고 있다. 동맹관계는 아니지만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상대하는 국가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항모 전단과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금년 가을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몽(中國夢)과 대국굴기(大國崛起)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미동맹이니 미일동맹이니 하는 말은 익숙해도 영일 함대의 합동 훈련은 생소하다. 일본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4자 안보협력체 Quad(미국, 인도, 호주, 일본)에 영국을 포함시켜 Quintet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영국은 기밀 정보를 공유하는 Five Eyes(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일본을 참가시켜 Six Eyes로 개편하자고 주장한다. 2021년 1월 영국은 미국이 탈퇴하고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 간에도 사이가 좋으면 서로 챙기는 이치와 같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 국제질서이다. 정글보다 더 냉혹한 현실이다. EU에서 벗어나는 브렉시트를 완성한 영국이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것은 여러 면에서 어색한 장면이다. 영국을 움직이게 한 일본의 외교력을 주목한다. 미국이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세계 경찰의 역할을 할 때는 전 세계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했다.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등장으로 국제관계가 다자화 되면서 세계질서도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일본은 영일동맹을 발판으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과 아시아로 진출하였다. 일본은 국제질서의 세력 판도 변화를 알아채리는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섬나라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일본 외교는 대국을 뒷배로 삼아 그들이 추구하는 노선을 실천에 옮기고 국익을 도모하는 능숙하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이나 국가의 자존심은 나중 문제다. 과거 영일동맹을 떠올리면 영국과 일본의 밀착이 좋은 의도로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영일동맹의 불편한 데자뷰다.



참고문헌

Y. H., kim. (1981). American frontier activities in asia: U.S-asian relations in the twentieth century. 박무성, 이형대 공역(1988). 미국의 아시아 외교 100년사: 20세기 미국, 아시아 관계. 서울: 신구문화사. 

조선일보. [선우정 칼럼] 외교로 망했던 나라의 외교 행태. 2021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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