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Jan 28. 2021

인류는 모기와 전쟁 중

말라리아와 퀴닌 이야기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여지없이 모기들이 극성이다. 다른 곤충과 달리 모기를 대하는 나를 보면 증오심과 적개심을 갖고 있다. 열대야에 어렵게 잠든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에 잠을 깨면 기필코 모기를 일망타진하고서야 잠을 청한다. 모기 매개 질병들이 건강과 안전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동물 1위는 모기다. 인류의 출현 이래 20만 년 동안 존재했던 1,080억 명의 인류 중 약 520억 명의 목숨을 모기가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의 절반 정도는 모기가 옮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모기를 매개로 하는 병원체에는 크게 바이러스, 기생충, 원생동물(원충류)가 있다. 바이러스는 가장 수가 많으며 황열, 뎅기, 치쿤구니야, 마야로, 웨스트 나일, 지카 바이러스, 뇌염이 있다. 기생충 중 숲모기, 얼룩무늬모기, 집모기가 공통적으로 전염시키는 기생충은 사상충이다. 사상충증만 해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1억 2천만 명이 시달린다. 사상충은 림프계에 침범하여 림프의 흐름을 막아 극심한 부종을 야기하며 많은 경우 시력 상실을 야기한다. 



     <사상충증>


말라리아는 주로 얼룩날개 모기에 물려 발병한다. 얼룩날개 모기속 480종 중 70종이 말라리아를 옮기며 전 세계적으로 동물을 매개로 삼는 말라리아 기생충은 450종 이상이 존재한다. 이중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기생충은 원숭이열원충, 난형열원충, 사일열원충, 삼일열원형충, 열대열원충 다섯 종류이다. 원생동물이나 기생충 중 치사율에서 말라리아가 독보적인 존재다.


말라리아 치사율은 유형마다 다르다. 열대열말라리아의 경우 감염자의 25-50% 정도가 사망에 이른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이 1% 내외로 알려지고 있는데 얼마나 치명적인가? 얼룩날개 모기에 물리면 말라리아 기생충이 혈관으로 침투하고 간에서 1-2주간 머물며 변태, 증식한다. 적혈구에 달라붙어 적혈구의 외벽을 뚫고 들어가 헤모글로빈을 들이켠 뒤 내부에서 또 한 번 변태와 증식 주기를 거친다. 이러니 말라리아 기생충을 두고 "진화 법칙의 위반이자 인류의 최대 해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말라리아 기생충은 진화의 법칙에도 맞지 않으면서 인류에게 상상 이상의 피해를 끼치고 있다.    


말라리아 기생충이 악명 높은 평가만을 받지 않는다. 열대 의학자 패트릭 맨슨(Patrick Manson)은 "아프리카 대륙과 그곳의 비밀, 신비, 그리고 보물을 지켜주었던 케르베로스(Cerberus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의 문을 지키는 개)는 바로 질병이었는데, 여기에는 곤충 하나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곤충은 모기다. "모기 매개 질병은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을 공격한 생물학 무기였다면,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을 방어하는 데 사용한 생물학 퇴치제였다." 적의 적은 친구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총과 칼도 아니었다. 면역력이 없는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퍼뜨린 전염병으로 무너졌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진출할 때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것 역시 모기였다.


다시 말라리아로 돌아가자. 우리나라에서 말라리아는 학질(虐疾)로 불린다. 우리말에도 '학을 뗀다'라는 것은 죽을 뻔했던 ‘학질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비유법이다. 피라미드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호모 사피엔스도 모기에게는 번번이 참패를 당했다. 전투기도 탱크도 모기 앞에서는 별무신통이었다. 무게 0.3mg 정도의 모기는 공룡시대는 물론 현대에도 여전히 가공할 무기다.


사마귀가 발을 들어 마차를 가로막는다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모기 앞에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힘을 써보지 못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지역의 열대 국가들을 식민지화하거나 그곳에서 거주하는 과정에서 말라리아로 엄청난 숫자가 목숨을 잃었다.


17세기 초 남아메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 원주민들이 말라리아 치료제로 키나(quina) 나무껍질을 갈아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신부들은 현지 원주민들의 원천 지식을 무단 복제하고 상업화시켰다. 선교사들은 키나 나무껍질(기나피 幾那皮)을 독점하고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껍질에서 추출된 퀴닌이 '예수회 가루'라고 불렸던 이유다. 1820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약리학자 펠레티에(Pierre Joseph Pelletier)와 카방투(Joseph Caventou)가 퀴닌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키나 나무 껍질>


1850년대 네덜란드는 키나 나무를 인도네시아에 옮겨 심는 데 성공했다. 퀴닌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수출하는 길이 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인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얻은 모기 매개 질병 대항력은 그들을 살려주는 동시에 노예로 전락시켰다.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한 면역력으로 무장한 아프리카 노예들의 몸값이 뛰었다. 콜럼버스 신대륙 진출 이후 가열된 신세계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국가는 모기 매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군사를 보유하고 있느냐였다. 신세계 침략의 선두였던 스페인이 유리했다. 선두주자였던 만큼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목숨을 잃었지만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다.


2차 대전 당시 퀴닌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20세기 중반 말라리아가 퀴닌에 대한 내성이 생겨 퀴닌이 별 효과가 없었다. 대체 의약품이 개발되었다. 미국에서 개발된 클로로킨과 DDT가 함께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세대들은 기억할 것이다. 이를 달고 사는 사람들 몸에도 DDT를 살포했다. 당시 DDT는 모기의 크립토 나이트(슈퍼맨의 약점)였다.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 키나 나무 플랜테이션과 퀴닌 공급을 독점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1942년 초 태평양 일대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면서 당시 전 세계 퀴닌의 90퍼센트를 생산하던 네덜란드령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다.  


베트남 전쟁은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열대 정글에서 전쟁을 치르는 미군과 월맹군에게 모기는 치명적이었다. 전쟁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절박함은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전력질주하게 하는 추동력이었다. 1971년 미국은 메플로퀸을, 1972년 중국은 아르테미신을 개발해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전쟁이 발명의 원동력이다.


아르테미신의 열쇠는 의외로 우리 주변에 있었다. 개똥쑥이다. 만지면 계피 냄새가 난다는 쑥이다. 식물 분류학으로는 아르테미스(Artemis)이다. 린네는 쑥이 여성에게 효험이 있다면서 그리스 신화의 처녀의 수호신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의 투유유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달여 복용해오던 개똥쑥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아르테미신을 개발하였다. 그녀는 2015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매년 수천만명의 인류가 목숨을 잃는 말라리아를 생각하면 대단한 공헌이 아닐 수 없다. 말라리아 연구자들은 3회 노벨상을 수상했다. 투유유 박사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기 이전 말라리아 원충의 발견(1907년)과 말라리아의 인체 감염 경로를 발견(1902년)한 공로로 노벨상이 주어졌다. 인류가 말라리아 퇴치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방증한다.


첨단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음에도 모기로 인한 전염병은 완전 퇴치되지 않고 있다. 모기는 변화에 적응하는 데 귀재다. 기후온난화는 그들의 서식처를 확장시키는 호기로 작용한다. 말라리아 기생충을 옮기는 모기만 해도 인간이 치료제를 만들어내고 10년 정도 지나면 내성이 생긴다. 모기는 진화의 법칙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했으면 1969년 WHO가 말라리아 퇴치에서 관리로 방향 전환을 했을까 싶다. 퇴치는 언감생심이고 환자 치료만 해도 다행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2억 명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4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말라리아의 원충 모기는 진화의 법칙을 비껴갔다. 진화의 법칙에 따르면 '자연선택을 거친 생물들 중 가장 강하고 가장 똑똑한 종이 살아남는다.' 모기가 새로 쓴 진화 제2법칙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인류는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칫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패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모기 매개 질병에 관한 한 전 지구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Winegard, T. C. (2019). The Mosquito:  A Human History of Our Deadliest                           Predator. 서종민 역(2019). 모기. 커넥팅.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406111412137864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9707156&memberNo=1891127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9717426&memberNo=1891127

https://www.medifonews.com/mobile/article.html?no=116621

작가의 이전글 절망 끝에 희망이 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