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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an 18. 2021

절망 끝에 희망이 핀다

눈풀꽃과 복수초

북극에서 내려온 바람이 매섭다. 겨울이면 겨울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혹한이 몰아치면 그 말은 쏙 들어가고 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긴 겨울을 인내할 수 있는 것은 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은 희망이고 생명이다. 미래의 희망이 있으면 현재의 어려움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 봄을 알리는 전령들이 있다. 그 전령들은 희망이 헛된 공상이 아님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루이스 글릭은 '눈풀꽃(snowdrop)'에서 그 희망을 노래했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로 시작한다. '눈풀꽃'은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눈 쌓인 대지에서 생명을 틔우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는 절망에 가까운 운명을 희망의 언어로 트랜스포머 했다. 


시인은 위대하다. 시인은 자연의 언어와 대화하고 소통한다. 시인은 새싹이 돋는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본다. 산모가 출산 전에 고통으로 신음하고 온 몸을 떠는 것처럼 나무도 산통에 시달린다. 이때 시인은 나무를 보듬고 감싼다. 그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위안이라는 듯.


 

<눈풀꽃>


우리나라에도 눈풀꽃과 유사한 '복수초(福壽草)'가 있다. 봄의 전령사 중에 가장 부지런하다. 복수초는 일본말이라고 하면서 '얼음새 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빙판에서 솟아나는 복수초는 노란색이다. 노랑은 평화다. 사계절의 맏이 봄부터 대지의 모든 생명(특히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냈으면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최중태 시인은 '눈 온 뒷날'에서 "사랑이 빙판이 된 땅 위로 노랗게 핀 복수초"라고 표현했다. 대지는 바윗돌처럼 단단한데 좀 늦게 나오면 누가 뭐란다고 기필코 나오고야 말았다. 


"철이 언제 들래?"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철'이란 사리분별을 하면서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의미다. '철'로 말하자만 현대인은 모두 '철'이 없다. 사시사철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철에 벗어난 식물들을 섭취하지 않는가. 딸기와 수박도 겨울에 나온다. 입덧하는 임산부도 언어 절제가 필요 없다. 지금보다 철이 있었던 시절에는 한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먹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인간은 점점 철이 없어지는데 눈풀꽃과 복수초를 보면 자연은 철이란 시침이 작동하고 있다. 어느 정치인이 어느 공직자에게 "자리 지키라고 했더니 주인 행세한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은 대자연의 임대인이다. 대자연이 인간에게 우주의 일부를 빌려준 것이다. 주객전도다. 인간이 주인인 양 행세하니 문제가 생긴다. 인내심이 바닥난 진짜 주인이 방 빼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코로나로 모두 힘든 때다. 14세기에 시작된 페스트는 19세기에 종식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1년 만에 백신을 만들었다. 페스트를 규명하는데 만 5세기가 걸렸는데 1년 만에 백신을 만들었다. 백신은 복수초와 눈풀꽃에 비유할 수 있다. 희망은 늘 절망의 끝자락에서 피워 오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필요의 정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인류 역사를 보면 벼랑 끝에 선 절박함, 절망감, 절실함이야말로 발명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복수초의 존재감이 더 그리워지는 겨울의 한 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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