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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14. 2021

투키디데스 함정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

해가 뜨면 지고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다. 인류 역사에서도 국가의 흥망성쇠는 해와 달과 같은 이치를 나타냈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한방은 전쟁일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새로 뜨는 국가와 지는 국가를 결정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는 인류 역사의 무대 주역을 교체시켰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대표하는 국가로 부상하면서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다. 총성 없는 차가운 이념 전쟁, 즉 냉전(cold war)이다.


이념 대결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완승으로 판명 났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의 해체 이래 유일무이한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다. 역사는 독주를 마냥 놔두지 않는다. 소련 해체의 공백을 중국이 차지했다. 중국은 세계 경제와 무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했다. 14억의 인구와 광활한 국토를 가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였다. 중국의 공장이 멈추게 되면 세계의 공장도 멈출 정도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블랙홀이 되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ydides Trap)은 국제 외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고대 아테네 장군 투키디데스(Thucydides)에서 따온 말이다. 투키디데스는 기존 맹주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 아테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서 양국은 지중해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오늘날 국제 관계를 설명하는 유력한 프레임이다. 신흥 무역 강국과 기존의 무역 강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일례로 많은 정치학자들은 패권국 미국과 패권을 꿈꾸는 신흥 국가 중국이 일인자의 패권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실제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충돌을 빚고 있는 사안은 많다. 홍콩, 대만, 신장의 주권 및 인권 문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해상 갈등, 무역분쟁, 첨단기술의 주도권 다툼 등은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 속으로 빠져 들수 있는 사례들이 아닐까 싶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원로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2017년 출간한 ‘불가피한 전쟁(Destined for War)’에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사용되었다. 앨리슨은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발생한 투키디데스 함정은 16차례에 걸쳐 일어났고, 이 중 12차례는 전면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는 미국보다 몸집이 커진 중국과 헤게모니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간에 17번째 전면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앨리슨은 중국이 세계 패권의 야망을 축소하거나 아니면 미국이 중국에 패권을 물려주고 뒤로 물러서지 않는 한 무역분쟁, 사이버 공격, 해상 충돌 등은 곧바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Atlantic 2015). 중국은 미국 학자가 주장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의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이 주장하는 투키디데스 개념은 중국을 국제 사회에서 밀어내고 미국 중심의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프로세스다"라고 주장하면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이재철 2021).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 사례>

                           

중국사를 보면 중국인들이 투키디데스 함정을 서구 중심의 국제 외교 용어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개국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해상 진출을 모색했다. 정화의 대원정이 말해준다. 그러나 명은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이후 해금령(海禁令)을 내렸다. 해양 진출을 원천 봉쇄하였다. 중국은 광활한 땅에서 나는 물자가 풍부하여 외국과 무역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대물박(地大物博)의 국가다. 그래서 19세기 유럽이 중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요구했을 때 '우리에겐 부족한 것이 없는데 굳이 다른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했다. 마지못해 광동지역에 13행을 설치하여 형식적으로 서양과 제한적인 무역교류를 할 정도였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중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며,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슈퍼파워였다. 오늘날 중국은 그들의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과거 자신의 위상을 되찾아오기 위한 전략으로 간주하는데,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프레임을 씌워 오늘날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중국이 쇄국정책을 펴는 과정에 유럽인들은 해양으로 눈을 돌려 대항해시대를 열고 해외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유럽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은 산업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세계의 부는 유럽 국가로 옮겨갔다. 중상주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유럽은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했다. 19세기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비난받는 아편전쟁(Opium War)은 우물 안 개구리 중국을 강제로 문호를 개방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화(中華)를 자처해 온 중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중국은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조공국과 속국을 거느린 대국에서 피지배 국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국땅을 이해관계에 따라 가르는 제국주의자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중국 외교정책의 근간이 된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를 견지하며 절치부심했다. 이제 어느정도 힘을 키웠다고 판단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어젠다로 세계 개입 전략를 설정하고 육로와 해로에서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도광양회에서 대국굴기로의 전환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면서 세계는 다극체제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육상 및 해상 진출 정책을 억지하기 위한 합종연횡이 진행 중이다. 합종은 약한 국가가 힘을 합쳐 강한 국가에 대항하는 외교전략인 반면, 연횡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 붙어 안전을 도모하는 외교전략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것이 국제 외교관계이다. 외교의 현실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손을 잡고 틀어지면 언제든 등을 돌릴 정도로 냉혹하다. 최근 미국, 영국, 호주가 삼국 안보조약(AUKUS)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호주가 프랑스와의 핵잠수함 건조 계약을 취소하고 미국과 손잡은 것을 보라. 국제외교관계는 국가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때 성립한다는 방증을 보여주었다.  


앨리슨의 투키디데스 함정이 맞아떨어지고 예정된 운명의 전쟁(destined war)이 발발한다면 인류 역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싶다. 작금의 형세를 보면 미국과 중국은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빚고 있는 가운데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 것 같다. 이대로는 극단적인 선택만이 남아 있는 것 같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인간의 광기로 대변되는 제국주의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타협점은 없는 것일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지적에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인가? "인간은 권력을 쟁취하는 데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 권력을 행복을 위해 사용하는 데는 둔감하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뻔히 함정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질주하는 것은, 앞만 보고 뜨거운 불속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불나방에 다름 아니다. 앨리슨에 따르면 투키디데스 함정에 걸려든 16번의 국제 관계에서 4번은 평화롭게 해결되었다고 한다. 항상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극단적 대결을 하면서 예견하는 17번째 투키디데스 함정도 평화로 귀결되었으면 한다. 


<아틀라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결국 미-중 전쟁 이끌까>. 2019년 4월 14일.

이재철. (2021). <매일경제>. <앨리슨 "中, 노골적 패권 지향" vs 자칭궈 "美, 일방적인 中 때리기">. 9월 15일.

정욱식. (2021). <프레시안>. <미중관계와 우리의 선택(2): 미중,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까?>. 4월 22일.

Allison, Graham. (2015). <Atlantic>.  <The Thucydides Trap: Are the U.S. and China Headed for War?>. Sep. 25.

<투키디데스의 함정>. https://wikis.krsocsc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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