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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Feb 21. 2021

인류세(Anthropocene)

인류가 대자연에게 진 부끄러운 빚

'인류세(人類世)'는 신조어다. 소득세처럼 세금의 한 유형인가 싶기도 하고, 인류에게 받는 세금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류세는 세금이 아니다. 2000년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 1933-2021)이 만든 지질학 용어다. 과거 지질과 기후 변화가 대자연의 변화 때문에 초래된 결과라고 한다면, 오늘날 인간의 활동이 그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세라고 한다. 대자연의 변화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대자연이 품고 있는 생물종(種)의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주인처럼 행동하면서 생물권의 변화를 주도한다. 대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종은 불법 점유자에 파괴자다. 이만저만한 주객전도가 아니다. 데이비드 애튼벌 경의 말은 인류세에 대한 명쾌한 개념을 내리고 있다. "우리 행성은 자연적인 사건 때문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우리 종의 활동으로 인해 변하고 있다."   


지질시대는 지구가 생긴 이후의 지구의 역사를 나타낸다. 지질시대는 지구의 환경 변화로 인하여 일어난 생물의 급격한 변화(화석의 변화)로 구분한다. 현재의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3기 홀로세(Holocene)에 속한다. 홀로세는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말하며, 빙하기가 끝나고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 인류세가 채택된다면 홀로세 이후의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게 된다. 인류는 1만 년 지속된 지질시대를 불과 수백 년 만에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할 시점에 놓여 있다.


인류세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1784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산업혁명을 촉발시킨 때로 보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핵 실험이 실시된 1945년 7월 16일을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학자마다 시점은 다르지만 인간이 자연계의 생물권에 변화를 초래하는 주범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인류세를 출현시킨 결정적 요인은 인간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면서였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은 수많은 기계를 발명하고 고도의 물질문명을 구가하고 있지만, 기계와 설비 운전에 필요한 에너지는 화석연료로부터 얻었다. 오늘날에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가 없다면 세계의 공장은 멈춰 설 것이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었다.  


인류세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20세기 총아', '세기의 과학 혁명'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등장했다. 그런데 인류는 매일 '플라스틱 수프'를 먹고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플라스틱 수프의 무게는 신용카드 한 장에 해당하는 5g에 달한고 한다. 인간에게 축복을 안겨준 과학적 발견인 플라스틱이 오히려 인간을 역습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하위 생물체들이 먹을 수밖에 없는 플라스틱을 다시 섭취할 수밖에 없는 생태 구조에 놓여 있다.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사이의 태평양에 형성된 거대한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인류의 부끄럽고 위협적인 자화상이다.  

  

꿀벌은 세계 식량 작물의 약 3분의 1의 수분을 매개한다. 인류세의 주역인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꿀벌의 개체수가 줄면서 심각한 식량부족이 예상된다. 기후변화와 농약 등 화학약품의 남용이 꿀벌의 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다. 과거 꿀벌이 수분을 매개했던 과일의 수분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묻혀줘야 한다. 숲이 파괴되면서 생태계 역시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 2015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8만 종 중 약 2만 5000종의 동물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현 추세가 계속된다면 지구는 공룡 멸종 이후 6500만 년 만에 대규모 멸종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앙은 어떤가? 오존층의 파괴,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빙하의 용해, 해양의 산성화, 따뜻해지는 바다.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리고 텍사스에 한파가 급습하여 블랙아웃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생명체가 외부 충격에 견뎌낼 수 있는 임계량이 있다. 'more and better'에 익숙해진 인류는 그 임계치를 애써 무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더 쉽고 더 간편하고 더 빠르고 더 많이 더 오래...' 마치 기록 경신을 부추기는 올림픽 경기의 구호 같다. 인류는 임계량을 벗어난 현상을 오랫동안 목격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관찰하거나 토론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NATO(No Action, Talk Only)는 멈추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지구에 닦칠 대재앙의 주요 원인을 제공한 인류가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고 행동에 옮겨야 할 때이다. 사실 이미 원인과 방법은 찾아냈다. 해법을 알고서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은 더 문제다. 


개인과 국가의 극심한 이기주의와 정치인들의 포퓰리즘도 지구를 더 병들게 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 가입했다. 지구인이 합심해도 중병으로 쓰러진 어머니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싶은데 자국 이기주의에 나몰라 했다. 지구를 어머니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앓는 병에 무관심하다. 이런 배은망덕과 불효도 없다. 쓰러져 누워버린 지구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전 지구인의 책임이다. 우선은 병든 어머니 지구를 고쳐 살려야 한다. 


인류애와 지구애는 병행되어야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1000억 원대 상금을 걸고 '탄소포집 기술 경연대회'를 개최한 것은 유권자의 표심을 사기 위한 현란한 구호나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 아닌 행동의 본보기다. 많은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고 지구 살리는 데도 더 많은 기여를 하면 좋겠다. 기업의 목표에는 수익창출 외에 지구애 실천이 추가되어야 한다. 지구가 중병에 걸리게 된데에는 기업의 책임도 무시못할 정도로 크다. 머스크는 탄소중립이 아니라 탄소를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연대회에서는 1기가톤 수준의 탄소 포집 기술 시스템을 구축할 팀에게 상금을 준다. 탄소 1기가톤은 뉴욕 센트럴파크 공원 부지 전체를 덮을 수 있는 1119피트(341m) 높이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와 같은 규모다. 구체적인 규모와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 지구 살리기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세는 지구인에게 붙여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질 역사에 인류세라는 오명이 붙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란다. 새로운 지질시대로서 인류세가 본격화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아마겟돈이 따로 있겠는가 싶다. 



중앙일보. '플라스틱 수프' 세상, 벗어나려면 100년도 더 걸려. 2021년 2월 16일 23면.

조선일보. 일론 머스크, 1000억 원대 상금 걸고 '탄소포집' 대회 개최. 2021년 2월 9일.

한겨레. ‘인류세’로 기후재앙 일깨운 과학계 거인, 크뤼천 별세. 2021년 1월 31일.

Christian, D., Mckenna, A., & Sullivan, T. (2016). Big story: Our incredible journey, from big bang to now. 윤신영, 이영혜, 우아영, 최지원(2018). 빅 히스토리. 서울: (주)사이언스북스.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81135.html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A7%88_%EC%8B%9C%EB%8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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