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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01. 2021

삼국지 인물 재발견

① 조조 휘하의 순욱

소설 삼국지, 즉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 시킨 명작이다. 오죽했으면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했겠는가 싶다. 소설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한다. 주목을 끄는 것은 단연코 천하삼분의 주역인 위 조조, 촉 유비, 오 손권을 중심으로 한 리더들의 치열한 지략과 경쟁일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도원결의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의 형제애와 삼고초려의 주인공 제갈공명의 지략과 충성에 무게를 둔다. 나관중이 명대에 쓴 <삼국지연의>가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는가에 대해서는 '삼국지, 제대로 알고 읽기'편에서 언급했다. 여기에서는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에 가려 빛을 내지 못했던 숨은 주역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순욱(荀彧)의 자는 문약(文若)이며 조조 휘하의 대표적인 책사다. 책사로만 부르면 순욱이 서운해할 지 모른다. 그는 책사뿐 아니라 조조 정권의 창업자이자 벗이었다. 무엇보다 순욱은 조조에게 뛰어난 인재들을 천거하였다. 순욱의 추천을 통해 희지재, 곽가, 순유, 가후, 사마의 등 조조가 탄탄한 정치적, 군사적 세력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인재들이 조조 진영으로 들어왔다. 순욱은 인적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으며 그가 추천한 인재들은 제 몫을 다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조가 인재를 얼마나 아끼고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순욱은 처음에 원소에게 의탁하였지만 그의 인물됨이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원소 곁을 떠나 조조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양금택목(良禽擇木)이다. '현명한 새는 나무를 골라 앉는다'로 직역할 수 있지만, 의역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키워줄 훌륭한 사람을 골라서 섬긴다'는 뜻이다. 순욱은 조조라는 나무를 골라 앉았다. 조조는 순욱이 자기를 찾아왔을 때 "나의 장자방이다"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촉의 유비에게 제갈공명이 있고, 오의 손권에게 노숙이 있었다면 조조에게는 순욱이 있었다. 조조에게 순욱은 특별한 존재였다. 조조가 전쟁터를 마음 놓고 누빌 수 있었던 것은 순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에게 소하가 있었듯이, 조조가 전쟁터에서 필요로 하는 군량과 군사 등 필요한 병참을 탈없이 제공한 것도 순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요즘식으로 치면 대통령제에서 내각을 관리하는 총리로서 그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조조의 군사(軍師)이면서 동지요 벗이기도 했던 순욱이 조조의 반대편에 서는 사건이 일어났다. 212년 조조가 위왕으로 등극하려는 시점에서였다. 조조의 측근 동소 등이 조조의 작위를 국공(國公)으로 승진시켜 조조의 뛰어난 공훈을 표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은밀히 순욱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욱은 조조가 본래 의로운 군대를 일으킨 것은 조정을 바로잡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이며 충정의 진실을 품고서 물러나 사양하는 인품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순욱은 조조를 통해 한 왕조의 재건을 꿈꾸었다(진수 2018). 조조와 순욱의 정치 노선의 차이가 확인되었다. 조조는 한 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려고 했던 반면, 순욱은 한 왕조의 토대 위에서 천하를 평정하고 평화를 가져오려고 했다. 조조와 순욱의 정치 노선의 차이는 조조가 위왕에 등극하면서 현실로 나타났고 동지이면서 벗에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조조의 위왕 등극은 그가 천자를 볼모로 제후들을 호령할 때부터 계획하고 있었겠지만, 남의 이목을 염려하여 저의를 감추었을 뿐이다. 


순욱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헌제는 213년 조조를 위왕으로 책봉했다. 순욱은 한탄했다. “한나라에 진정한 충신이 없구나.” 순욱은 퇴청하는 길에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수레를 타고 백마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순욱은 조식의 수레를 막았다. “조 공자, 백마문은 오로지 천자만이 다닐 수 있는 문입니다. 어찌 이곳을 가려고 합니까. 수레를 돌리세요.” 아버지 조조의 권세를 믿은 조식은 순욱이 반대하는데도 고집을 피웠다. 마침 그곳을 지나치던 조조가 이 광경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조조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수문장을 참수하라고 명령했다. 순욱이 조조에게 따졌다.


“엄격한 규율을 어긴 것은 조식 공자인데 어찌 죄 없는 수문장을 참수하시는 것입니까?”


조조가 말한다. “수문장에게 죄가 있다. 만약 수문장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조식이 어찌 규율을 어겼겠는가?”


“그런 연유라면 승상께서 왕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만조백관들은 모조리 죽어 마땅하겠군요.” 순욱은 위왕에 등극한 조조에게 공개적으로 승상이라는 호칭을 썼다. 조조의 역린을 건드렸다. 조조는 할 말을 잃었다. 조조는 순욱에 대한 실망과 함께 분노가 극에 달해 이렇게 소리쳤다.


“백마문을 당장 철거해라. 오늘부터 그대가 말하는 그 규율은 이제 없는 것이다.” 조조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새로운 규칙을 정하였다.



순욱은 이처럼 조조에게도 당당했다. 천하의 조조도 순욱의 말에는 대꾸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순욱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순욱이 조조의 위왕 등극을 반대하면서 둘은 정치적 동반자요 지기에서 완전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조는 손권 정벌에 나섰고, 순욱은 병에 걸렸다. 조조는 순욱에게 음식을 보냈는데, 두껑을 열어보니 빈 그릇이었다. 순욱이 빈 찬합을 보낸 조조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무려 30년 가까이 조조와 생사를 함께 한 순욱이다. 순욱은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한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순욱은 인물됨을 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조조에게 의탁했지만, 그의 정치적 신념은 한 왕조의 재건이었다. 순욱은 한 왕조를 재건할 적임자로 조조를 택했고 조조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순욱도 조조의 야욕을 꺾지는 못했다. 대세는 조씨의 나라가 되었다. 순욱이 골라 앉은 조조라는 나무는 그 위에 앉은 새를 떨어뜨렸다. 신념의 차이는 관계의 단절을 초래한다. 천자를 인질로 잡고 제후와 천하를 호령하면서 새로운 왕조를 준비하는 조조와 조조를 통해 한 왕조의 재건을 꿈꾼 순욱과의 인간 관계도 정치적 신념의 차이로 단절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순욱이 조조에게 협력했기 때문에 한 왕조가 무너지고 군주와 신하의 관계도 뒤바뀌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단 송대의 배송지는 '과연 순욱과 같은 인물이 시대의 영웅을 보좌하여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꾸어놓으려 할 때, 선택할 수 있었던 인물이 조조가 아니면 그 누구이겠는가?'라고 하면서 순욱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드라마 <삼국기밀: 한헌제전>은 순욱의 정치적 신념과 인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순욱이 조조가 아닌 다른 나무 위에 앉았다면 후한말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나관중. (2002). 삼국지. 이문열 평역. 민음사.

진수. ( 2018). <정사 삼국지-위서1>.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진수. (2018). <정사 삼국지-촉서>.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박기종. 매일경제. 20년 간 조조의 최측근이었던 ‘순욱’ 동지, 친구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2인자. 2016년 5월 25일.

드라마 <삼국기밀: 한헌제전>(2018)

드라마 <삼국지>(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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