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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07. 2021

삼국지 인물 재발견

② 조조의 휘하 곽가

곽가(郭嘉, 170-206) 자봉효(奉孝)이다. 봉효는 조조가 책략에 뛰어난 참모 희지재를 잃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순욱이 천거하여 조조 휘하에 들어왔다. 원래 곽가는 원소 휘하에 있었으나 원소를 이렇게 평가하면서 조조에게 왔다. "원공은 한갓 낮은 선비를 모방하려고 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기틀을 알지 못한다. 일을 처리할 때 생각은 많으나 요령이 적고, 모략을 좋아하지만 결단력이 없어 그와 더불어 천하의 큰 난국을 구제하고 패왕의 대업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에서는 원소는 명문가 출신에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많았지만, 천하에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머물다 그의 곁을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순욱도 원소 곁에 있다 조조에게로 왔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법인데 원소의 인간됨은 큰 인물을 품어 앉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양금택목(良禽擇木). 현명한 새는 나무를 가려 앉는다고 하지 않던가. 현명한 새들은 원소 나무보다는 조조 나무에게 몰려갔다.   


그런 반면 조조는 인재를 알아보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인재를 보면 그에 걸맞은 파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재라고 판단되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한다. 조조의 인재 발탁과 용인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저 비상한 사람에겐 반드시 비상한 예로써 대우해야 한다"(풍몽룡 2008, 94)고 했다. 조조가 그랬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렇게 얻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하는 조조의 능력이야말로 위촉오 삼국 중 가장 강성한 국가의 터전을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오늘날 기업에서도 조조의 인재 발굴에 대해 벤치마킹을 하는 이유다.


곽가는 조조와 첫 대면을 한 후 조조를 이렇게 평가한다. "조공은 진정 나의 주군이시다!" 조조 역시 곽가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내가 대업을 이루게 할 이는 바로 이 사람이구나." 이번에도 순욱의 인재풀에서 곽가가 나왔다. 순욱이 추천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제 몫을 해냈다. 조조의 참모 중에는 예주 영천군 출신이 많은데, 이는 순욱의 고향이 영천이기 때문이고 순욱이 고향 출신 인재들을 조조에게 천거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유비는 곽가 덕분에 살아났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송대 배송지의 <삼국지주>에 따르면, 순욱이 조조에게 "유비는 영웅의 포부를 갖고 있으므로 지금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조는 그것을 곽가에게 물어보았는데 곽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공은 검을 뽑아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고, 백성을 위해 어지러움을 없앴습니다. (중략) 지금 유비에게는 영웅이라는 평가가 있고 우리 쪽에 몸을 돌렸는데, 그를 죽이면 현인을 죽였다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가 있는 선비들은 의심을 품을 것이며, 마음을 바꾸어 다른  주군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은 누구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겠습니까? 무릇 걱정되는 한 사람을 없애 천하의 신망을 잃는 일은 현명한 처사가 못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조조는 유비를 살려둔다.


삼국이 천하를 삼분하고 용호상박으로 대결할 때 벌어진 수많은 전쟁 중에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을 삼국지의 3대 전쟁으로 꼽는다. 곽가는 조조가 군사적, 정치적으로 토대를 굳게 만든 관도대전, 즉 원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또 곽가의 예지력과 통찰력은 어떤 책사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신들렸다고 할 정도다. 곽가는 여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고, 강동의 손책이 암살당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그렇게 되었다. 원소가 죽고 나서 두 아들 원담과 원상이 조조와 대치를 이어나갔는데, 곽가는 형제 간에 불화가 생겨 내분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정확하게 그렇게 되었다. 조조가 오환족(흉노)의 정벌을 주저하고 있을 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득하여 정벌에 성공한 공로도 곽가의 책략이 주효한 덕분이었다.


조조는 곽가가 죽었을 때 슬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나와 동년배인데, 오직 봉효만이 가장 젊소. 천하를 평정하는 일이 끝나 그에게 뒷일을 부탁하려 했는데, 중년의 나이에 요절했으니, 이는 운명이오!" 조조에게는 수많은 참모들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초창기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조조가 곽가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특별한 것 같다.  조조의 곽가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조조가 나중에 형주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  역질을 만나 군함을 모두 태워버리고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봉효가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곽가는 뛰어난 참모로서 조조가 초기에 정치적, 군사적 토대를 놓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드라마 <삼국기밀: 한헌제전>에서도 봉효의 기이한 습관과 신들린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서린 작가의 <인연>에 이런 이 있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오늘날 조조를 조직이나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자로 비유한다면, 조조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인재들을 잘 관리하고 잘 활용한 대표적인 리더가 아닐까 싶다. 조조의 인재관은 오늘날에도 많은 함의를 제공한다. "만약 반드시 청렴한 인사만 등용할 수 있다면, 제 환공이 어떻게 천하의 패자가 되었겠는가! 그대들은 나를 도와 신분이 미천한 사람이라도 잘 찾아내어, 오직 재주 있는 사람만을 천거하라. 나는 그들을 얻으면 기용할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조조가 신하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인재를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 것이다.

 

나관중. (2002). <三國志>. 이문열 옮김. 민음사. 

진수. ( 2018). <정사 삼국지-위서1>.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풍몽룡. (2008). 열국지. 이언호 평역. 큰방.

허쯔취안. (2019). 위촉오 삼국사. 최고호 옮김. 역사 모노그래프.

드라마 <삼국기밀: 한헌제전>(2018)

드라마 <삼국지>(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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