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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1. 2021

죽음에 대하여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

누구나 자신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책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헬렌 니어링(1904-1995)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977년 이석태 변호사가 우리말로 번역하였고 출간 이후 판수를 거듭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기록물로서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나의 고민에 대안을 제시한 명저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조화로운 삶'이란 사랑과 삶과 죽음이 하나 되는 삶이다. 특히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정의를 잘 묘사하고 있다. 


"삶에서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죽음에서 전체로서의 삶은 응축된다. (...) 삶은 죽음을 향한 순례이다.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은 당신을 향한 출발을 시작했다. (...) 죽음은 전 세계에 걸쳐 수백만 가지 방법으로 순간순간마다 일어나고 있다. 존재는 죽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한다. 죽음은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다. 삶은 다만 죽음을 향한 순례이기 때문에 죽음은 삶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다."(니어링 2009, 216 재인용).


위의 인용문은 니어링이 인도의 철학자 라즈니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의 내린 글을 접하지 못했다. 문장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한가! 나는 이 문장을 수없이 읽으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죽음 자체를 두렵게 느끼는 것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죽음을 향한 순례를 멋지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죽음은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 순간 가을 단풍을 연상했다. 늦가을 만산홍엽의 단풍을 보라. 오색으로 물든 단풍은 그들 삶이 최고의 절정에 달했으며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죽음은 절정에 달한 단풍에 다름 아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된 적 있다. 장례 절차에 따르면, (물론 전통사회에 비하면 오늘날 장례문화는 간소화되었지만) 사람이 죽은 뒤 입관을 하기 전에 염(殮)을 한다. 부모님의 염하는 장면을 보았다. 시신을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향약을 바른 다음 얼굴을 화장했다. 모친의 경우에는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바르는 등 여성의 얼굴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핏빛이 없던 얼굴에 화장을 하고 나니 누워계신 모친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돌아가신 분 같지가 않았다. 모친의 얼굴은 단풍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일대에서 <죽음>에 대한 강좌로 유명한 셀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의 특성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케이건 2018, 375-398). 첫째는 죽음의 필연성(inevitability)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그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이 태아나 살아가면서 다른 조건들을 다 배제할 때 가장 공정한 것은 바로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모두 27명의 왕이 즉위했다. 평균수명은 46세로 회갑을 넘긴 임금은 태조(74세), 2대 정종(63세), 15대 광해(67세), 21대 영조(83세), 26대 고종(68세) 등 5명뿐이었다. 죽음 앞에서는 왕후장상도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김미영 외 2014, 28-31). 둘째는 죽음의 가변성(variability)이다. 한마디로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은 필연적인 사실이지만 수명은 제각각이다. 똑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도 수명은 다르다. 셋째는 죽음의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이다. 한 번은 죽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 누구든지 얼마나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지 모른다. 영화 <인 타임>에서는 사람이 언제 죽을지를 안다. 인간의 수명이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커피 1잔은 4분, 권총 1정은 3년, 스포츠카 1대는 59년이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 13자리의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그 즉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시나리오처럼 사는 것이 아니다. 넷째는 죽음의 편재성(ubiquity)이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 운전을 하다가도 죽을 수 있다. 인간은 단지 죽는다는 필연적인 사실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이처럼 죽음에는 여러 가지 특성과 함께 하는 것이다. 고로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필연성, 가변성, 예측 불가능성, 편재성이라는 죽음의 네 가지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대전제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인정하고 수용하면 죽음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평소 물을 펑펑 사용하다 제한급수를 받고 보면 물이 얼마나 귀한 줄 안다. 물론 사람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다. 사람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유형, 즉 부정, 인정, 무시이다(케이건 2018, 399). 죽는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부정했다가도 인정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아예 무시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유하자면 죽음이라는 사실이 이성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정서적인 반응을 감정이라고 한다면, 이성과 감성의 시계추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죽음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또는 무시하든 여하튼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이른바 죽음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나열하면 이런 것들이다. "장례식에 어떤 이들이 오기를 바라나요? 추모식은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까요? 당신을 추억하는 영상이 있기를 바라나요? 즐겨 듣던 노래가 흐르면 좋을까요?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싶나요? 가족묘지? 아니면 납골당? 화장을 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어느 곳에 뿌려지기를 원하나요? 미리 정해 둔 장례업체나 전문가가 있나요? 남겨진 이들 중에 누가 제일 걱정되나요? 그렇다면 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놓아야 할까요? 당신이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게 가장 자랑스러운가요?" 등등(슐츠 2019). 언젠가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에티켓을 지키려면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영국에서는 2008년 '생애말기치료전략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한 개념을 4가지로 정리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 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김미리 2013). 삶의 질의 종착역은 죽음의 질에 달려 있다.  


죽음의 에티켓을 몸소 실천한 스승이 계셨다. 스승이 쓴 책 이름은 <백조의 노래>다. 백조는 늙으면 무리를 떠나 지내다가 죽음을 예감하면, 외로이 조용하게 아름답게 슬프게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조의 노래는 통상 자서전의 단골 제목이 된다고 한다. 스승의 <백조의 노래>를 받아 읽고 많이 울었다. 스승은 책에서 죽음의 에티켓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셨다. 집안 묘지관리, 저작의 보완, 인간관계와 물건 정리, 자기 관리, 유언장 작성, 믿음의 진솔한 표명(김정환 2011). 스승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 걸쳐 거의 완벽한 에티켓을 실천에 옮기셨다. 


법정 스님은 인간이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마무리>이다. 여기에서는 일부를 인용하여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첫째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지 못하면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둘째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간다. 비움은 충만으로 자신을 채우게 된다. 셋째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넷째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다섯째,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법정 2009, 22-26).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그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법정 2009, 162). 삶과 죽음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죽음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체의 의미는 특별한 것이다. 생명체로 태어난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인디언 속담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는 혼자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뻐하는 인생을 살라." 언젠가 나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백조가 될 것이다. 나만의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


슐츠, 놀란트. (2019). <죽음의 에티켓>. 노선정 옮김. 파주: 스노우폭스북스.

실즈, 데이비드. (2014).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 파주: 문학동네.

김미리. (2013). <조선일보>. <5년 전 '좋은 죽음' 개념 만든 영국, 마지막 10년 삶의 질 세계 1위>. 11월 4일.

김미영 외. (2014). 노년의 풍경. 파주: 글항아리.

김정환. (2011). <백조의 노래>. 월인.

니어링, 헬렌. (2009).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이석태 옮김. 파주: 보리.

법정. (2009). <아름다운 마무리>. 문학의 숲. 

케이건, 셀리. (2018). <죽음이란 무엇인가>. 파주: 엘도라도. 

EBS <데스> 제작팀. (2014). <죽음>. 책담.

영화 <인 타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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