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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Nov 28. 2021

봉사의 멋과 맛

어느 주말의 연탄 나눔 봉사

한 편의 시를 감상하면서 글을 시작하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근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시인은 우리 모두에게 연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연탄이 의인화되어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순간이다. 시의 위대성이다.


11월 마지막 주 토요일 학과 학생회에서 조직한 연탄 나르기 봉사에 참여했다. 10여 명이 다섯 가구에 8백 장의 연탄을 날랐다.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이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연탄이다. 개미마을은 서울에 몇 군데 남지 않은 달동네이다. 인근에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에 비교하면 마치 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으로 느낄 정도로 가난하고 살기에 불편한 동네이다. 마을 이름이 '개미 마을'이다. 마을 이름에 곤충 이름을 붙여 짓는 것은 드문 일이다. 호기심에 서대문 구청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개미 마을의 유래에 대해 찾아보았다. 개미마을은 6.25 전쟁 후 만들어진 달동네라고 한다. 전쟁 후 살 곳이 마땅치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이 동네에 들어와 임시로 천막을 덧대 살았다. 당시에는 천막의 모습이 인디언의 거주형태와 닮아 ‘인디언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개미마을이라는 정식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후 수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거주민들이 워낙 부지런하여 곤충 중에 근면 성실의 대명사인 개미에 비유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체나 지대가 높고 비탈질 뿐 아니라 교통이 불편하여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웬만한 세대들은 연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은 누군가에게는 연탄가스중독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탄광으로 널리 알려진 화순에 적을 둔 나에게도 석탄과 연탄은 너무도 익숙하다. 선친도 갱도에서 나는 다이너마이트 폭발음을 많이 듣는 바람에 60대 이후에는 청각장애를 앓을 정도였다. 기차역 플랫폼에는 타지로 실어날릴 석탄이 가득 쌓여 있었다. 탄가루는 인근 마을의 지붕이며 마당이며 빨랫줄의 옷가지를 검게 물들였다. 여학생 교복의 하얀 칼라도 금방 시커메졌다. 당시에는 탄가루가 환경과 인체에 그렇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탄광이나 역에서 일했던 마을 어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90년대부터 시골 고향에서는 난방용으로 기름 보일러와 연탄을 사용하여 겨울을 나곤 했다. 물론 이전에는 산에서 채취한 땔감을 사용했다. 혹한의 추위에도 알뜰한 부모님은 비싼 기름을 태우면서 집에 온기를 만들지 않으셨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지내셨다. 어느 부모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오히려 아랫채 방에 연탄을 때면서 그곳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으셨다. 어쩌다 자식들이 올 때는 기름을 아끼지 않고 보일러를 가동하셨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리라.


늦가을이 되면 부모님은 빈 창고에 연탄을 가득 채웠다. 연탄을 가득 채워놓고 흐뭇해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충분한 연탄이기에 안도감과 함께 뿌듯함이 생겼을 것이다. 토요일 '개미마을'  할머니의 모습에서도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이 겹쳤다.




주말 몇 시간 연탄 나르는 봉사를 하고 나서 이러쿵저러쿵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매주마다 봉사를 실천하는 자원봉사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오래간만에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했지만 그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시키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긍정 바이러스의 전파다. 봉사는 무엇보다 내 안의 연민(compassion)의 감정을 불러낸다고 생각한다. 연민이란 인간이 느끼는 동정심에 실천(행동)을 더한 것이다. 지행합일이다. 바위에 깔려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는 것이 동정(sympathy)이라면, 연민을 가진 사람은 지렛대를 이용하여 고통받는 사람을 구한다. 동정이 연민으로 바로 전이되지는 않는다.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한 법이다.


연민의 감정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고통스럽고 아프면 치료하고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연민의 감정이 있으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지 않는다. 타인이 겪는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연민과 봉사의 특성이 바로 교차한다. 봉사의 시작은 역지사지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표준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으로부터 벗어나 나와 다른 이웃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나만의 세계에서 갇혀 있던 자아를 확장시켜 나와 다른 이웃과 타인의 세계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봉사자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거울을 쥐고 있다. 그 거울로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이웃의 삶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봉사하는 사람은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행복하다. 마라톤 선수에게 런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있듯이 봉사자에게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가 있다. 봉사는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아닐까 싶다. 봉사의 멋과 맛이다. 개미마을에서 얻은 내 삶의 소중한 체험이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자아를 확장시키면서 이 세상은 나와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일궈 나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개미마을의 할머니들이 아무 탈없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시길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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