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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3. 2020

자(字), 호(號) 뭐가 중한디

이름은 함부로 부르는 것이 아니여

넷플렉스에서 방영하는 삼국지에서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데 한결같이 이름과 자(字)를 적고 있다. 유현덕(유비), 조맹덕(조조), 손중모(손권), 관운장(관우), 장익덕(장비), 조자룡(조운), 여봉선(여포), 제갈공명(제갈량), 사마중달(사마의)... 독자들은 괄호에 있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유현덕이니 제갈공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자(字)를 일컫는다. 옛사람들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가? 현대인에게 이름이란 한 번 지어 부르면 평생 사는 데 문제가 없는 데 말이다.    

  

옛사람들은 이름을 귀하게 생각했다. 태어날 때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이름은 족보나 관직과 같은 공식 문서에 사용되었다. 어릴 적에는 아명을 지어 불렀다. 기휘(忌諱: 임금이나 높은 이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바꾸거나 획의 일부를 생략함)라던지 피휘(避諱), 즉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금기 문화가 만들어 낸 관습이다. 예를 들어 달구벌을 의미하는 대구(大邱)는 원래 대구(大丘)로 적었다. 그러나 대구(大丘)에서 구(丘)가 공자의 이름 구(丘)와 같다고 해서 획을 추가하여 오늘날 대구(大邱)로 고쳐 쓰고 있다.     

     

자(字는 성인이 되기 위해 치르는 관례와 관계된다. 관례는 대개 15세~20세 사이에 치르는데 이 관례를 치른 후 자(字)를 짓게 된다. 이 자는 자기 마음대로 지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나 친척 혹은 어른이나 스승이 지어주는 것이다. 또 유의할 점은 이름의 의미와 관계되는 자를 짓는 것이 불문율이다. 전통사회에서 관례를 치르고 자를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식이었는데, 바로 그가 성인이 되었다는 징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자는 자기보다 윗사람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사용되었고, 아랫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 함부로 부를 수 없게 했다. 혹시 정미용, 이숙헌, 김사능, 이경호, 김원춘이라고 부르면 어떤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순서대로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김정희의 자이다. 우리는 대개 다산, 율곡, 단원, 퇴계, 추사 등 그들의 호를 부르기 때문에 전혀 낯선 인물이 되고 만다.     


호에 대해 알아보자. 호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싶은 욕구에서 새로 만든 이름이다. 이 호를 짓는 것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그래서인지 호는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다. 굳이 작호론을 따지자면 자신이 거처하는 곳의 이름을 취해 호를 짓고(연암 박지원, 성호 이익), 자신의 용모나 신체적 특징을 빌어 짓고(표암 강세황, 미수 허목),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에서 호를 짓고(오원 장승업, 완당 김정희), 자신이 하는 일이나 직업을 빗대 호를 짓고(호생자 최북, 고산자 김정호), 서적이나 고전에서 호를 취한 경우(남명 조식, 공재 윤두서)도 있다. <한정주(2015). 호, 조선 선비의 자존. pp.606-615>.     


연암 박지원이 쓴 홍덕보 묘지명의 일부를 보면서 이름, 자, 호가 어떻게 쓰이는가를 확인해보자. '전 영천 군수 남양 홍담헌 휘(諱: 죽기 전의 생전의 이름) 대용, 자 덕보가 금년 10월 23일 유시에 운명하였나이다.' 홍덕보는 홍대용을 말한다. 홍대용은 북학파의 비조이면서 조선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호는 담헌이고 자는 덕보다. 연암이 홍대용의 자를 사용한 것을 보면 둘이 서로 친한 관계였음을 나타낸다.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동갑내기였다. 이때는 서로 호와 자를 써도 된다. 만약  이황과 이이처럼 나이 차이가 나면 어떻게 호칭할까? 이황은 이이의 호 율곡이나 자 숙헌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이이는 이황의 자 경호라고 사용하면 안 된다. 퇴계라는 호를 사용해야 한다.     


자, 호는 옛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요즘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어른들은 자기의 본명이 함부로 불러지는 것을 꺼려한다. 옛사람들은 생애발달단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알고 미리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에게는 번잡하게 보일지 몰라도 옛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소통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와 호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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