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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an 08. 2022

2인자의 조건

① 제왕(帝王)의 스승: 한나라의 장량(張良)

어느 조직이나 최고 권력자 아래에는 2인자가 있기 마련이다. 2인자는 최고 권력자를 도와 최고 권력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2인자는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이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최측근의 2인자가 일정 기준 이상의 위상이나 권한을 가지게 되면 2인자를 내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최고 권력자가 2인자를 견제하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고, 2인자가 최고 권력을 넘보면서 파국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 2인자를 견제하는 측근들 간의 권력 다툼으로 2인자가 소멸되기도 한다. 최고 권력자와 2인자의 관계가 처음의 관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끝난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조선왕조시대에 2인자를 말할 때 정도전을 언급하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면서 태조 이성계의 최측근 참모였다.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이념 및 국정방향을 수립, 설계한 명실상부한 2인자였지만, 태종으로 등극한 이방원과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척살당하고 만다. 한명회는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2인자였다. 한명회는 세조, 예종, 성종에 걸치는 오랜 기간 권세를 누렸지만, 결국 사후 17년 만에 폐비 윤 씨 사건에 연루되어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 


중국 역사에서도 2인자의 끝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전국시대 말기 여불위(呂不韋 ~ BC 235)만큼 권력을 누리고 국정을 농단한 2인자도 드물 것이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여불위는 진시황의 생부로도 알려졌는데 시황제의 견제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마감하게 된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최측근이었던 장손무기(長孫無忌 584-659)도 그랬다. 이세민은 장손무기의 누이동생과 혼인하여 둘은 처남 매부 간이었다. 장손무기는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으로 이세민을 태종으로 등극시키는데 핵심 역할을 했지만, 태종의 사후 후궁 측천무후와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2인자와 최고 권력자의 관계가 항상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인자이지만 최고 권력자와 끝까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역사의 본보기로 평가받은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최고 권력자와 2인자가 선시선종(善始善終)의 관계로 마무리를 지은 모델이 있다.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의 최측근 참모였던 장량을 꼽을 수 있다. 장량은 2인자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삼국지에서 유비의 삼고초려의 주인공이었던 제갈량도 장량 못지않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경우에는 유비가 죽은 후에 왕위를 승계한 아들 유선의 최측근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지만, 위나라 정벌 원정 과정에서 서거하고 만다. 2인자로서 장량과 제갈량이 각각의 삶의 결과에서 보여준 결은 다르다. 


장량(~ BC 186)은 이름은 량(良)이고 자(字)는 자방(子房)이다. 장량의 원래 성은 희(姬) 씨다. 장량의 가문은 조부와 부친 등이 5대에 걸쳐  한(韓)의 재상을 지낼 정도의 명문가이다. 한이 진(秦)에 의해 멸망하면서 장량의 가문도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는 한나라의 원수 진시황을 죽여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진시황의 성은 조(趙)이고 이름은 정(政)인데, 재미있는 것은 영(嬴)씨 성을 붙여 영정(嬴政)이라 불렀다. 이는 시황제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 조상이 서융(西戎)이었음을 드러내고자 과거적의 성인 영 씨를 붙였다. 장량은 전 재산을 털어 시황제를 저격할 자객을 구하였는데, 역사에서는 그 자객의 이름을 '창해역사(滄海力士)'라고 부른다. 결과적으로 시황제 저격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창해역사는 현장에서 죽고 장량은 현상범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부터 장량은 원래 성 희(姬)를 버리고 장으로 바꾸게 되었다. 


장량은 도망자 신세로 지내는 과정에서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되는데 이 두 사건은 그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째는 황석공(黃石公)과의 기연(奇緣)으로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손에 넣은 사건이었다. 장량은 이 병법서를 통달하여 향후 탁월한 전략가로서 뿐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둘째는 항백(項伯)과의 만남이었다. 항백은 초나라 사람으로 항우의 숙부가 된다. 항백의 부친 향연은 초나라 장군으로 초나라뿐 아니라 이웃 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망가였다. 장량이 문(文)의 명문가라면 항백은 무(武)의 명문가라고 할 것이다.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초나라의 항우였다. 당시 유방의 군사력은 병사의 숫자, 휘하 장수, 병참, 배경과 인지도 등 많은 측면에서 항우의 군사력과 정치력에 비해 열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유방은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장량과 같은 인재들을 휘하에 영입하여 장애물을 하나씩 돌파하였다. 유방과 항우의 쟁패에서 승부처는 인재영입에 달려있었다. 이 인재들 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바로 장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장량 자신이 자신의 안목에 따라 목숨을 바쳐 따라야 할 리더로 유방을 선택했다.  


장량의 존재는 한 고조 유방의 삼불여(三不如)에서 알 수 있다. 삼불여란 무엇인가? 이는 유방이 한나라 황제에 오른 뒤 스스로 성공 요인을 분석, 평가한 것이다. '내가 세 사람들보다 못하다'라는 뜻이다. 원래 삼불여에 등장하는 인물은 장량, 소하, 한신 등의 삼걸(三傑)인데 여기에서는 유방의 장량에 대한 평가에 대해 살펴본다. "방략을 품고 계획을 구상하여 신묘한 계산으로 장막 안에 계책을 마련하고 천리 밖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면은 짐이 장량보다 못하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의 고조가 된 것은 인사, 재정 등에서 탁월한 행정 능력을 발휘한 소하(蕭何)와 한신(韓信)과 같은 백만 대군을 지휘한 장수의 공헌도 컸지만, 장량의 전략이야말로 한나라 건국에 절대적으로 기여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다. 


장량을 통해 2인자가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필요충분조건 세 가지를 생각해본다. 첫 번째, 2인자는 최고 권력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통찰력과 지식을 구비해야 한다. 두 번째, 2인자는 최고 권력자가 설정해 놓은 권력 행사의 금도(襟度)를 넘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 2인자는 최고 권력자와의 인간관계를 초심대로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장량은 이 세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을 구비하고 또 이를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하늘이 내린 책사라든지 제왕의 스승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첫 번째는 2인자가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으로서 그의 기본 자질 및 역량과 관련된다. 필요조건만 따지면 이 조건에 적합한 2인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충분조건까지 구비했느냐이다. 두 번째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최고 권력자와 2인자의 권력관계가 상당한 기간 유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2인자는 최고 권력자의 표면적 또는 묵시적으로 그어놓은 권력의 최소 가이드 라인을 지키지 않으면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원인은 반드시 2인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고 권력자 역시 초심을 지키고 선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2인자에게 솔선수범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권한을 남용하거나 권력을 부당한 곳에 사용한다면 2인자의 입장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짓밟거나 자신도 유사한 행동을 따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 번째의 조건은 최고 권력자나 2인자 모두 갖추기 어려운 노릇이다. 그만큼 그 본보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역사를 보면 최고 권력자와 2인자가 초심을 지키기는커녕 불구대천지 원수로 지내거나 서로 중 한 명을 죽이고야 마는 비극으로 치닫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서로를 필요로 해서 맺어진 인간관계가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원수가 되고 만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던가. 열흘 붉은 꽃이 없고 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한다. 권력의 속성을 꼬집는 말일 것이다. 최고 권력자는 2인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포부와 철학을 표출하고 구체화시킬 수 있고, 2인자 역시 최고 권력자의 지위와 위상을 빌어 자신의 신념을 구현할 수 있다. 이렇게 최고 권력자와 2인자는 서로 의기투합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맺어졌다가도 서로의 관점이 다르면 깨질 수도 있다. 권력의 속성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의리가 실종되고 각자의 이익만을 좇는 염량세태를 보면서 장량과 같은 2인자를 떠올리는 이유다. 


김동호. (2018). <한겨레: 온>. <[대만이야기 56] 장량과 황석공의 만남>. 3월 7일.

송은명. (2017). <위대한 2인자들>. 시아. 

위리. (2021). <제왕의 스승 장량>. 김영문 옮김 . 더봄

염철현. (2021). <현대인의 인문학>.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이문열. (2012). <초한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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