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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7. 2023

전인교육(全人敎育)

그 순서는 체육(體育), 덕육(德育), 지육(智育)으로

우리나라 학교 건물 중앙에 '전인교육(全人敎育)'이란 표어를 새겨 넣은 학교가 많다. 전인(全人), 즉 온전한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일 것이다. 전인교육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원만한 인격자를 기르기 위하여 인지적 · 정의적 · 심동적 영역의 완전한 조화를 지향하는 교육'이라고 정의 내린다. 이해하기 난해하다. 보다 쉽게 설명하면 전인교육(whole-person education)은 학생의 좌뇌와 우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이다. 좌뇌가 주로 담당하는 이성과 우뇌가 담당하는 감성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교사(校舍) 중앙에 큼지막하게 써 걸어놓은 '전인교육'의 현수막은 전시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학교 교육은 그야말로 입시교육에 함몰되어 주입식 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족쇄가 채워졌다. 교육이 추구하는 본질과 실제는 완전히 다르게 돌아간다. 시험의 가중치가 높은 국어, 영어, 수학을 위주로 배우면서 인문사회와 예체능 과목 등은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주로 좌뇌의 용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면 좌뇌가 기울어진 채 사회로 진출하거나 대학에 진학한다.


우리나라에서 '전인교육'이란 용어는 현대에 와서 생긴 말이 아니다. 19세기말 고종은 전인교육의 취지를 담은 '교육조서'를 발표했다. '교육입국(敎育立國)조서'라고도 한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교육으로 새로 세워보자는 야심찬 취지다. 조서는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리는 칙서다.


이제 짐은 교육하는 강령을 제시하여 허명을 제거하고 실용을 높인다. 덕양(德養)은 오륜(五倫)의 행실을 닦아 풍속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지 말며, 풍속과 교화를 세워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의 행복을 증진시킬 것이다. 체양(體養)은 동작에는 일정함이 있어서 부지런함을 위주로 하고 안일을 탐내지 말며 고난을 피하지 말아 너의 근육을 튼튼히 하며 너의 뼈를 건장하게 하여 병이 없이 건장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지양(智養)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서 지식을 지극히 하고 도리를 궁리하는 데서 본성을 다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며 옳고 그르며 길고 짧은 데 대하여 나와 너의 구별을 두지 말고 상세히 연구하고 널리 통달하여 한 개인의 사욕을 꾀하지 말며 대중의 이익을 도모하라. 이 세 가지가 교육하는 강령이다.


고종은 교육 강령에서 유교경전 중심의 교육을 지양하고 덕육(德育)·체육(體育)·지육(智育)의 교육을 지향할 것을 표방하고 있다. 조선의 교육이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교국가 조선이 실용적인 교육으로 대변환을 추구하겠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발상이다. 유교경전 중심의 교육은 오늘날 암기식 교육 내지는 주입식 교육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1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형식과 내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고종의 칙서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교육의 3대 지향점이 덕양(德養), 체양(體養), 지양(智養)이라는 것이다. 교육의 첫째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격을 도야하는 것이고, 둘째가 체력을 강건하게 하고, 셋째가 지적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요즘 지덕체 교육은 고종의 덕체지 교육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덕체지가 지덕체로 바뀐 것은 서양의 교육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이식되면서이다. 서양의 학교에서는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지(head), 덕(heart), 체(hands)의 균형 잡힌 인간을 지향했다. 심리학에서는 지덕체를 인지적, 정의적, 심동적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였다.


저자는 고종이 전인교육의 목표를 '덕체지'의 교육으로 삼은 것에 주목하면서 그 순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덕의 수양을 최고의 수신(修身)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 교육 목표의 최우선은 덕양(德養)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교육의 우선순위는 체덕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덕을 함양하고 지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A sound mind in a sound body).


부산교육청의 '아침 체인지(體仁智)' 프로그램에 주목한다. 체인지는 영어의 'change'도 된다. 학교 교육의 변화다. 학교 수업 시작 전 아이들은 뛰기, 걷기, 줄넘기, 피구 등 다양한 운동을 한다. 뛰어놀고 나면 아이들의 두뇌 활동이 촉진되고 집중력이 향상된다. 부산교육청은 체덕지에서 '덕'을 '인(仁)'으로 바꿨다. 저자의 생각과 같은 기발한 발상이다. 전인교육의 시작은 학내에 다양한 스포츠동아리와 예능 동아리를 만들어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가입시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에겐 필요한 운동기구나 악기 등은 쌓아둔 교육교부금으로 지원하면 될 것이다. 공부는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기(氣)가 발바닥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뛰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 아이들을 책상에 붙잡아둔다고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에게 체력은 곧 학습력이고 체력은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은 학생에게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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