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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Oct 26. 2023

중등학교 평준화의 명암

빗나간 엘리트 의식

저자는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화순에서 광주로 전학을 했다. 당시는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인해 인구의 도시집중문제가 야기되었다. 저자는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형을 졸랐다. 저자가 광주에 있는 학교로 전학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광주에서는 기간을 정해 농촌 출신 학생의 전입을 금지했다. 형은 그것을 모른 채 해당 학교를 방문했는데 이미 마감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저자는 시골 학교에 자퇴원서를 제출한 상태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형이 해당 학교를 찾아 딱한 사정을 말하고 상담을 한 결과 교육청이 허락하면 전학을 받아준다고 했다. 이때 형은 고등학교 시절 교육감으로부터 상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와라." 형은 교육감실에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렵게 교육감과 통화할 기회를 얻었고 동생의 전입 승낙을 받아냈다. 


중학교는 일명 '뺑뺑이'(중학교 무시험 입학제도)로 미션계 중학교로 배정되어 통학버스를 타고 3년을 다녔다. 삼 형제가 자취 생활을 했는데 참 힘들고 여유가 없던 때였다. 당시 세태는 시골에서 도회지로 오면 일가친척 집에 더부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 삼 형제가 친척 집에 한꺼번에 머물기는 어려웠다. 주말마다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서 한 손엔 반찬을 들고 어깨에는 쌀을 메고 왔다. 부모님은 식량보급기지 역할을 했고 자녀들은 도시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일요일 기차역에는 도회지로 다시 돌아가는 또래 학생들로 붐볐고 기차칸에는 반찬 냄새가 진동했다. 여름철에는 다려 입은 교복이 땀에 젖었다. 부모의 교육열과 자녀의 향학열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역시 '뺑뺑이'(고등학교 평준화 정책)로 광주일고로 배정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호남의 명문고에 배정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꿈 이야기를 하셨다. "한일자(一)로 쭉 뻗은 철도길을 가다 하얀 고무신을 떨어뜨렸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꿈이 맞았다고 좋아하셨다. 한자의 학교 이름 일고(一高)에서 일(一)와 쭉 뻗은 철도길을 겹쳐 생각하면 틀린 말씀도 아닐 것 같아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학해서 보니 3학년 선배들은 시험기수였다. 광주일고는 호남권의 명문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명문고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시기였다. 지역마다 일고(一高)라고 이름을 붙인 고등학교가 많은 줄은 입학하고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명문고로 배정받아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다. 선배들은 뺑뺑이 기수를 후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했고 뺑뺑이들은 시험성적으로 입학했던 선배들 앞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다. 교사들은 한 술 더 떴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몇 명이 서울대에 입학했고, 그중 몇 명이 고시에 합격하여 검판사를 하고 있다는 등의 자랑을 하면서 너희들은 대단한 선배들이 앉았다 간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랑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참고 삼아 비평준화 고등학교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는 60년대 말 ~ 70년대 초였는데, 이때 이른바 명문고로 불리는 고등학교의 서울대 진학률을 살펴보자. 경기고는 졸업생(N수생을 포함)의 절반 가량인 300명 이상이 합격했다. 서울고, 경복고가 200명 내외의 합격자를 내며 경기고와 함께 3대 명문고로 불렸다. 경기여고, 경남고, 부산고, 경북고, 광주일고가 순서대로 100명 이상의 합격자를 냈다. 용산고, 대전고, 전주고도 100명 안팎의 합격자수를 냈다. 오늘날 평준화 이후 새로운 명문고로 부상한 과학고, 외고 등에서 서울대에 진학하는 졸업생이 100명 미만의 숫자라는 생각 하면 대단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KS는 한국산업표준(Korean Standard)을 뜻하지만, 대한민국에서 KS는 경기고와 서울대 출신을 일컬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 번 동문회 모임에 참석했는데 선배는 후배를 만나면 ‘몇 회냐?’라고 묻는 것이 일상적인 질문이었다. 선배는 후배의 대답을 듣고 뺑뺑이 기수인가 시험 기수인가를 머릿속에서 계산했다. 시험 기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보여준 편협하고 배타적인 행동은 모교에 대한 애정을 식게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았는데 어쩌란 말인가? 누가 누구를 탓하는가 싶었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이나 서열화 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할 때 무척이나 서운하고 안타까웠다. (저자는 어쩌다 시험으로 들어간 일고 출신 동문을 만나면 뼈있는 농담으로 '광주이고'를 나왔다고 한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평준화정책에 대해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고교 평준화에 대해 찬성하느냐?'라는 질문에 2/3 정도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의 다양화에 대해서 찬성하느냐?'라는 질문에도 2/3 가까이가 찬성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국민들 대다수는 학교 평준화도 찬성하고, 교육의 다양화도 찬성한다. 평준화는 교육의 기회균등이고, 교육의 다양화는 획일적 교육을 지양하라는 말이다. 우리 국민들은 교육의 기회가 특정인에게 쏠리는 특권교육, 엘리트교육에 염증을 낸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이나 획일적 교육에 대해서도 반감이 크다. 세상이 바뀌고 아이들도 예전 하고는 많이 다른데 과거의 교육내용과 교육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별화 교육이나 맞춤형 교육으로의 방향전환을 요구한다. 


과거 명문고에 다녔던 사람들은 인지능력, 수리력, 언어능력, 즉 IQ가 좀 뛰어났던 사람들이다. 중고등학교의 공부는 주로 암기하고 계산하고 글을 쓰는 것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능력이 좋으면 공부를 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는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은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오늘날에는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ce, 多重知能) 이론에 주목한다. 다중지능이론은 아이들이 가진 개성과 고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인간 지능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인간은 언어, 논리수학,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 성찰, 자연친화 등 8가지 서로 다른 영역의 지능을 갖고 있다. 개인의 지적 능력에 있어서의 개성과 적성은 8개의 지능 각각이 발현되는 정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수학을 잘하지 못했던 친구는 예술가로 성장했고, 운동에 소질이 부족했던 친구는 생물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은 오래오래 지켜보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엘리트 의식에 도취된 비평준화 시절 명문고 입학생은 평준화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갈라 동문회를 따로 개최하는 등 학벌주의적 차별 행태를 공공연하게 보인 사례도 있었다. 빗나간 엘리트 의식이 만든 우습고도 서글픈 일화다. 누구나 다 똑똑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는 필요하고 그런 엘리트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불리는 사람들 중 빗나간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문제다. 명문학교를 졸업하면 엘리트라고 착각한다. 청소년 시절에 잠깐 다닌 학교 경험이 평생 엘리트라는 보장은 아니다. 만약 학교를 기준으로 엘리트 여부를 판가름한다면 우리 인생은 너무나 억울하다. 엘리트는 평생에 걸쳐 노력하고 성취해 나가는 사람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는데 소홀했지만 이후에 더 정진하여 자신이 가진 역량을 키운 사람이 참 엘리트다. 엘리트는 장마 끝에 잠깐 드는 햇볕 같은 존재가 아니다. 진정한 엘리트는 남보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가족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능력과 기량을 기여할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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