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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0. 2022

아! 어머니

사랑과 희생의 아이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모두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영어 단어 'womb'은 히브리어의 자비에 해당한다. 어머니가 출산을 할 때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어머니와 자식은 자비의 끈으로 묶여 있다. 생명의 탄생은 어머니의 자비와 아이의 배려가 합작하여 만든 기적이다. 어머니는 자비를 베풀어 자궁문을 열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가 아직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든지 머리가 아니고 손이 자궁문을 향해 있다면 어머니와 아이의 생명은 위험해질 수 있다. 오늘날에야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면 산모도 아이도 살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 역시 어머니의 자비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세 가지의 강렬한 기억이 남아 있다. 첫째, 어머니는 교육열이 대단하셨다. 그 어려운 보릿고개를 견디면서 3남 3녀를 공부시켰다. 물론 남자들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자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만을 졸업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누나들과 여동생에게 평생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유교적 전통과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부모님 의식의 한계였고 경제력도 뒷받침 되어주지 못했다. 부모님은 제한된 가정의 경제력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여자보단 남자에게 마음을 두었을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계가 곤란을 겪었다. 저자는 고등학교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학교에서 독촉을 받곤 했다.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퇴학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담임교사의 최후통첩을 들었다. 어머니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등록금을 마련하였지만 아버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싶어 하셨다. 부모님은 등록금 용처를 놓고 티격태격했고 급기야 어머니는 하얀 손수건으로 싼 등록금을 담장 너머로 던졌다. 담장 너머에 있던 나는 잽싸게 받 기차역으로 냅다 달렸다. 어머니는 피쳐였고 저자는 캐처였다. 아버지는 저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해서 돈을 벌었으면 했다. 일명 '지게 대학'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씀에 반대했다. 어머니의 지론은 공부란 때가 있는 법이고 힘들어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고한 신념을 갖고 계셨다.  


   둘째, 어머니는 엄격하셨다. 베이붐 세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6, 70년대의 초등학교는 콩나루 교실에 2부제 수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 개개인에게 교육적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오늘날 쉽게 듣는 맞춤형 교육은 언감생심이었다. 저자는 학교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읽고 쓰고 셈하는 3R's을 잘하지 못하니 툭하면 매를 맞거나 청소하거나 벌을 받기 일쑤였다. 고문관인 셈이었다. 학교에 가기 싫었고 무서웠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로 가는 대신 산이나 시냇가로 갔다. 몇 날 며칠을 학교에 가지 않고 양지바른 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냇가에서 자맥질을 하였다. 이른바 땡땡이를 쳤다.


   어느 날 집에서 사달이 났다. 보자기로 싼 책 보따리가 장롱 밑에서 나왔다. 어머니가 바느질하시다가 장롱 밑 공간으로 실패가 굴러들어가는 바람에 그것을 찾기 위해 긴 자를 밀어 넣었는데 저자의 책 보따리가 나왔다. 땡땡이가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자애롭고 인자하시던 어머니가 매를 들었다. 저자는 어머니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매를 맞았다. 어머니는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때리셨고 끼니를 굶겼다. 아버지는 더 혼이 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집 옆 산에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에 묶어놓았다. 밤이 깊어졌을 때 나무 위에 둥지를 튼 부엉이가 측은하게  저자를 쳐다보았다. 몇 시간이 지난 뒤 형제들이 묶었던 새끼를 풀고 집으로 데려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종아리에 안티프라민이 잔뜩 묻어있었다. 자식에게 매를 든 어머니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싶다. 깊이 잠이든 아들의 종아리에 약을 발라 주셨다.


   셋째, 어머니는 부지런하시고 정신력이 강하셨다. 어머니는 체구가 작고 체중도 많이 나가지 않았다. 농촌에서 논농사는 남자들이 주로 맡고 밥 농사는 여자들이 도맡았다. 특히 여름 밭의 잡풀을 매는 일은 가장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오늘날에는 햇볕을 차단하는 비닐을 깔고 파종을 하고 강력한 제초제를 사용하여 일손을 덜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에는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제거해야 했다. 저자는 주중에는 광주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다 토요일마다 시골집으로 왔다. 지금이야 자취 생활하는 데 필요한 주거환경이 잘 갖춰져 있지만, 당시에는 반찬과 식량 등을 가지고 와야 했다. 고향은 자취생활을 위한 보급기지인 셈이었다.


   해가 긴 여름에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부님 집에 가면 어머니는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에게 뭐가 필요할까를 생각한 끝에 주전자에 설탕을 탄 시원한 물을 담아 밭으로 가져갔다. 시골에는 변변한 냉장고나 얼음도 없을 때였다. 어머니 아들이 가져다준 시원한 설탕물을 맛있게 드셨다. 여름철 오후 4, 5시경이면 갈증도 생기고 당도 떨어질 때다 보니 단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저자는 그런 인체 과학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막연하게나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땡볕에 아이스크림이 당기듯 어머니도 단 것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 설탕물을 마시고 기운을 냈다고 회고하셨다. 탈진 상태가 될 때까지도 호미를 놓치 않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낮잠을 주무시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몸을 움직이셨다. 집은 항상 반짝반짝했고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융숭하게 대접했다. 마실을 다니지 않으셨고 명절에나 마을 친척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누구든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랑과 희생은 병렬 관계다. 사랑 없이 희생할 수 없으며, 희생을 동반하지 않은 사랑이 있겠는가. 어머니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과 손발에 돌덩이처럼 단단한 굳은살을 보라. 여자로서 어머니도 고운 피부에 젊게 보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인간다움을 위한 기본 욕구를 포기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어디 있더란 말인가. 긴 설명이 필요없다. 어머니의 주름살과 굳은살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해준다.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노래나 시로 표현한 곡들이 있다. 양주동 작시, 이흥렬 작곡의 <어머니의 마음>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기리는 대표적인 노래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자식이라면 누구나 공감되는 애절하고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어머니는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한다.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비유할 것은 하늘 아래에서는 찾을다. 지고지순하다. 어버이날 자식들이 이 곡을 부를 때 어머니도 자식도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에는 사랑과 희생에 대한 감사와 기억해줘 고맙다는 감사가 중첩되어 있을 것이다.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의 <어머님 은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세상 사람들은 가장 높은 것에 비유할 때는 하늘을 기준으로 삼고 가장 넓은 것은 땅으로 기준을 삼는다. 사랑하는 연인들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때,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은혜는 하늘보다 더 높고 땅보다 더 넓다.

  

   시인 정한모(1923~1991)는 <어머니>라는 시에서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라고 했다.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사랑에는 눈물을 동반한다. 어디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어머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키우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보름달이 얼굴을 내비치는 날이면 여지없이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자식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빈다. 자식은 잘되면 자신이 잘해서 잘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자식의 가슴에 심어준 광택의 씨가 자라 진주가 된 것이다. 양식 진주가 인공적으로 조개 속에 진주핵을 집어 넣어 기르는 것이라면, 어머니의 진주는 오랫동안 눈물의 광택 씨를 자식의 가슴에 심어놓은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고애자(孤哀者)다. 아버지를 여의면 고자(孤者)가 되고, 어머니를 여의면 애자(哀者)가 된다. 어버이가 없으니 얼마나 외롭고 슬프겠는가. 부모 모두 잃고 십 년째 되다 보니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알 것 같다. 부모가 계신 그곳이 고향인 줄도 알았다. 저자는 부모님이 물러주신 값없는 유산으로 살고 있다. 물질은 써버리면 없어져버리지만 정신은 온전히 이어진다. 저자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부모님에게 태어나고 싶다.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어디에든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두었다." 바쁜 신은 자신을 닮은 천사를 이 땅에 내려보냈고 그 천사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다. 


   부모님은 사고가 난 뒤에 열어보는 블랙박스와 같은 존재라고 하던가. 블랙박스는 사후에 문제의 원인 규명을 위해 열어보는 기계장치다. 우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야 부모님의 블랙박스를 열어보게 된다. 그 블랙박스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시인 랭 리아브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뿐이다. 그것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도 언젠가 세상과 이별할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어버이의 사랑일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식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저자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그 사랑의 파동이 더 커지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류시화. (2020). 《마음 챙김의 시》. 수오서재.

박돈규. (2022). 《조서일보》. <뒤늦게 열어본 '아버지'라는 블랙박스>.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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