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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08. 2022

기후변화,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③ 산불

2000년 초봄으로 기억한다. 고향 화순의 어머니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가 산불을 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산불의 원인은 아버지가 쓰레기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과정에서 마침 불어닥친 강풍으로 불씨가 인근 임야로 번졌다. 다행히도 불길은 동네 사람들과 소방서의 수고로 몇 시간 만에 잡을 수 있었다. 아버지 본인도 얼마나 놀라셨는지 입술이 바싹 타셨다. 더 큰 문제는 야산에 있는 묘지의 묘지목들을 홀랑 태웠다는 것이었다. 후손들 입장에서는 조상님에 대한 이런 무례도 없을 것이다. 발이 손이 되도록 빌고 배상해주었다.   


2022년 3월 초 동해안의 울진, 삼척,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로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화마(火魔)에 휩싸였다. 마른장마와 겨울 가뭄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총강수량과 강수 일수는 과거 50년 중 가장 적었다. 강수량은 13.3mm로 1973년 관측 이래 최저치를 기록해 평년 강수량 89mm의 14.7%에 그쳤다. 이 정도면 산에 있는 수목들은 거의 '마른 장작'이 되고 만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도별 산불 발생 건수는 2010년 282건, 2012년 197건이던 것이 2015년 623건, 2017년 692건, 2019년 653건, 2020년 620건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례적인 가뭄과 폭염으로 발생하는 산불의 증가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며 전 세계적인 재난이 되고 있다. 2021년 7월 그리스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하루 70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한 적도 있다. 호주에서는 2019년 사상 최악의 산불로 가을에 발생한 산불은 이듬애 봄까지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거의 매년 대형 산불이 발생하여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고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


산불은 주로 사람의 실수 또는 방화로 일어나는 인재(人災)다. 산림청에서 집계한 산불의 주요 원인은 입산자 실화(38%),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14%)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산불 발생이 증가하고 점차 규모가 커지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고온현상과 유례없는 가뭄으로 건조한 땅이 조성되어 불이 잘 타고 잘 번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주로 매년 4월 중부 및 영동 지역에 집중돼 있었는데 최근에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전국화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겨울 가뭄이 지속되고 초봄에 바짝 말라 있는 숲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여기에 강풍이 불면서 순식간에 불길이 확대된다.


고온건조, 가뭄, 강풍이 지속되면서 대규모 재난으로 이어지게 된다. 산불 발생의 공통점은 건조, 가뭄, 강풍의 삼박자가 맞았을 때 대형산불로 확대되어 미증유의 피해를 입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시베리아에서도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산불이 발생하였다고 하니 어느 지역인들 산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후체계의 변화, 즉 기후변화에서 초래된 재앙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머물지 않고 범국제적인 재난의 양상을 띤다.


산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나 탄소중립 시대에는 산림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 산림은 이산화탄소의 순흡수원이다. 우리나라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6% 정도라고 한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단순 공식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흡수량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대형 산불로 산림이 소실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할 산림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로 가뭄과 폭염이 지속되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산불은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감소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류 문명은 주요 산림 수종인 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나무야말로 인류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나무가 없었다면 오늘의 인류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나무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가는 나무와 문자의 어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무의 어원은 그리스어로는 '홀라에(hulae)'이고, 라틴어로는 '메테리아(materia)'인데, 모두 '첫째가는 물질'이라는 의미다. 이탈리아어 레그노(legno)는 '나무'를 뜻하는 데 나무를 만들던 시대에는 '배'를 지칭하기도 했다. 고대 아일랜드의 알파벳 문자도 나무이름에서 따왔다. A의 앨림(alim)은 엘름(elm 느릅나무), B의 비스(beith)는 버치(birch 자작나무), C의 콜(coll)은 헤이즐(hazel 개암나무), D의 데어(dair)는 오크(oak 참나무)에서 유래했다(펄린 2006, 24-25).


산림 수종의 탄소흡수량은 어느 정도일까? 임령(林齡) 30년생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상수리나무 1ha(10,000제곱미터로 약 3천 평, 축구장의 1.5배)는 연평균 약 14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우리나라 주요 8개 수종 중 단위 면적당 온실가스 흡수량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종인 소나무 30년생 숲 1ha는 매년 11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함으로써 승용차 5.7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상쇄하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승용차 1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를 상쇄하려면 매년 소나무 13그루를 심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이선정・임종수・강진택 2019).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수종인 소나무는 '으뜸'을 뜻하는 우리말 '수리'에서 '솔'이 돼 '솔나무'로, 다시 '소나무'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탄소중립 시대에 소나무가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높은 줄 전혀 모르고 식재한 결과다. 우리 민족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현실은 기후변화로 산불의 발생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산불은 탄소저장창고인 나무들을 소실시키고 지구의 기온을 더 뜨겁게 하여 온난화를 만드는 탄소 악순환 체계로 이어진다. 우리들이 보는 숲 역시 생로병사의 단계를 밟는다. 임령이 증가할수록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감소하다. 숲의 평균 나이는 30~40년생 정도이고 나이가 들면 생장이 둔화되어 탄소를 저장하는 창고 기능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숨을 쉬는 생명은 모두가 수명이 있다. 우리나라 국토의 70%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탄소중립 시대에 산이 많다는 것은 천혜의 조건을 가진 것이다. <산에 사는 메아리>라는 동요 가사가 있다. 6.25 전쟁 직후인 1954년에 작곡되었으니 국가에서 산림녹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온 동요라고 생각된다. 1절만 인용해보자.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

벌거벗은 붉은 산엔 살 수 없어 갔다오.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

산에 산에 산에다 옷을 입히자

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


이 동요를 부르던 시대에는 지구온난화나 탄소중립 대한 개념조차 없었으며, 벌거숭이 민둥산에 조림을 하는 주요 이유는 토사 유출을 방지해 산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람들이 나무를 심어야하는 이유를 쉽게 공감한 최고의 노래다. 우리나라 조림이 이 정도로 되기까지 공로가 크다. 산은 인류의 허파요, 생존의 보류이다. 인간과 나무는 하나의 순환 고리 안에 단단히 매어져 있다. 위대한 자연 생태의 순환 고리를 끊지 말자(고규홍 2014). 탄소저장창고를 지켜내자!


고규홍. (2014).《나무가 말하였네》. 마음산책.

펄린, 존. (2006).숲의 서사시》. 송명규 옮김. 따님.

이선정・임종수・강진택. (2019).〈주요 산림수종의 표준 탄소흡수량〉. 산림정책이슈》. 129.

고재원. (2021).동아사이언스》.〈호주 산불, 기후변화가 원인이었다〉.  4월 5일.

김미향. (2022).한겨레》.〈"요렇게 바싹 마른 꼴 처음" 22년 내 최대 산불, 기후 역습의 시작〉. 3월 12일.

김민제. (2022).한겨레》.〈최근 '10년 평균 2.5배' 산불...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은?〉. 3월 3일.

손석우. (2022).조선일보》.〈기후변화 영향으로 빈번해진 대규모 산불... 산림 보존, 복원 적극 나서야〉. 4월 6일.

정의길. (2021).한겨레》.〈그리스 50도 폭염 속 곳곳 산불…“지구 종말 같은 광경”〉. 8월 8일.

편광현. (2022).중앙일보》.〈산은 '마른 장작'이었다. 여의도 49개 태운 역대급 산불 원인〉. 3월 6일.

황지윤. (2021).조선일보》.〈그리스 섭씨 46도, 30년 만의 폭염... 대형 산불 잇따라〉. 8월 5일.

〈산불통계연보〉. 산림청.

구길본. (2012).〈산림 탄소흡수량 국가 표준 개발 소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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